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한 시집의 표지에 생선이 종렬로 걸려있다. 나는 무심결에 몇 마리인지 세고 있다. 7마리다. 결혼 전에 같이 살던  6남매와 홀로된 친정어머니까지 7명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석쇠에 구워 한 마리씩 살을 발라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회귀의 시간 속에는 혼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남편을 이해했다.  
지난 연말에 엄청 큰 소포꾸러미를 현관에서 보았다. 보내는 사람은 남편이고 받는 사람은 막내 시누이다. 평소에 자지레한 일거리를 나에게 다 맡기고 오직 직장일에만 몰두하던 남편인데, 나이가 들면서 손 아래 시누이에게 보낼 물건을 오라버니가 직접 꾸린다. 언젠가 시누이에게 갔더니 우리집에 있어야 할 다양한 물건들이 그 집에 옮겨져 있는 것을 보고 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들먹이자니 마음 가난함이 들킬 것 같아 그냥 지나갔다가 언젠가 한번 큰소리를 낸 적이 있다. 이러한 현상도 나이 들어가며 나타나는 한 변화라는 것을 내가 느껴보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러고 보니 고인이 된 내 아버지도 그랬다. 평생 한 솥밥 먹고 살던 어머니에게 애틋한 선물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분이 동기간 중에 한 분 남은 작은 아버지에게 값나가는 것을 죄다 챙겨줘서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하는 모습을 봤다. 그 심중에 무엇이 작용해 저러는가 궁금하던 차 오늘 7마리 생선에 대한 생각이 인간을 이해하는데 텍스트가 돼준다.
세간에 졸혼이란 말이 떠돌고 있다. 노부부가 함께 생을 보기 좋게 마무리하기에는 개성이 너무나 달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부가 더러 보인다. 한 생을 살면서 길들인 직업적 특성도 나타날 것이고, 유년의 풀지 못한 감성이 나이 들어 등장하는 사례도 있다. 각자의 개성으로 하여 지나치게 배우자를 간섭하거나 자기식으로 요구하지 않고 서로에게 자유를 허락하면서 사는 부부상은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는다. 
나는 폭력만 없다면 이해하고 싶다. 애써 노력하며 고집스런 상대방을 고치려고 들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각자 다른 색으로 물드는 나무처럼 노년에 마음고생하느니 적정선에서 부부로 공유지분만 나눠 가지며 다른 개성이 그늘지지 않게 인생을 마무리 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7마리 생선을 보면서 7이란 숫자로 다가오는 인연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며, 그것은 내 기억에서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인연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주고 싶어진다.
한 지붕 안에서 한 솥밥 먹으면서 살았어도 나타나는 행위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하나의 생명체가 벌이는 생명활동에 지장을 줬다면 그 것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추억과 연민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곤란하고 자기철학에 빠져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도 어려운 삶이 된다.
누구든지 조금 멀리 두고 살아야 자기 완성에 이르는 동안 실수를 줄일 수 있고 버릴 정서의 파편에서 타인을 보호하게 된다. 사람마다 나이가 들면서 참다가 터지는 말들을 나는 곱게 담아받을 용기가 없다. 말 뿐만 아니라 너무나 다른 행위 조차도 같아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멀리 두면서 다스리고 살아내야할 것만 같다. 그러니까 인생을 걸러낸 찌꺼기를 스스로 처리하도록 간격을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노령인구가 늘어나고 홀로 사는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모두가 사랑 결핍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결혼을 해 가족을 이루고 그 구성원들과의 사이에서 피어나는 가족문화를 가진 사람과 홀로 나이든 사람들이 문화의 차이 때문에 힘들어질 일들이 수도 없이 나타날 것이니 최소한의 관계맺기라도 하고 살려면 밀어내고 싶을만큼의 밀착보다는 알맞은 거리를 두는게 좋다. 
나는 숙제처럼 사랑해야 할 사람이라도 있는 게 좋다. 사랑이 확대되지 않고 멈추어 선 세상을 생각하기에는 살 시간이 너무나 길어서 아직도 밀당이 필요하다. 원가족을 만들지 않으면 생선 7마리를 보고 그리워할 사람이 없는 거다. 술 몇병과 과자를 듬뿍 보낼 대상도 없는 거다. 인생은 홀로든 여럿이든 원시가 올 때면 조금 멀리 두고 조금 뜸하게 보며 살아야 그 사랑이 애틋하고 명료하다. 그리고 소중해진다. 부모든 동기간이든 친척이든 이웃이든 그리울 만큼의 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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