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과 마주친다.
알람이 울리면 10분의 꿀잠과 아침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출근버스를 놓치면 과감히 택시를 탈 것인지, 요행을 바라며 다음 버스를 기다릴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짜장면과 짬뽕의 선택은 한국인에게 영원한 고민거리다.
연애와 결혼 상대자도 선택의 문제고, 흡연과 음주의 쾌락과 건강한 삶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도 역시 중요한 선택의 문제다. 인생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리사무소도 마찬가지다. 층간소음으로 아래 윗집이 싸울 경우 윗집 개구쟁이들 문제인지, 아랫집의 신경과민 때문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측정기도 솔로몬이 되진 못한다.
다툼엔 다 각자의 이유가 있어서 누구 손을 들어줘야 할지 난감하다.
입주민 간 파벌이 생겨 반목과 질시를 거듭할 때 어느 한 쪽을 편드는 건 모험에 가깝다.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정과 비리를 알면서도 맞서 싸울 것인지, 모른 척 그냥 넘어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건 참으로 어렵다. ‘양심’과 ‘현실’은 같은 편에 서 있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한 주택관리사가 관리사무소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부실계약을 발견했다. 계약을 위해 장기수선계획을 18년이나 당겨 조정했고, 쪼개기 계약으로 과태료 처분도 받았다. 그대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신임 소장으로 큰 부담을 무릅쓰고 업체에 ‘공사중지’를 통보했다. <관련기사 1면>
이후 그의 난관은 ‘예상대로’다. 전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과 관리사무소장이 그만 둘 정도로 위중한 상황임에도 회장직무대행으로 선임된 다른 동대표는 공사강행을 고집했다.
소장이 공사의 부당함과 위험성을 조목조목 알려줘도 회장대행은 위탁관리회사에 소장 교체를 요구했다.
“소장이 협조해야만 월급을 줄 수 있다”며 직원 급여는 물론 각종 대금의 지출까지 모조리 막아버렸다. 은행 인감도장은 막강 무기였다.
공사업체도 계약대로 공사비를 집행하라고 압박해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두 손 들 만 하다. 전임 소장 때 계약한 것이니 눈 감고 따를 수도 있고, 정 안되면 최후의 저항수단은 사직서를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공사계약의 당위 여부를 따지기 위해 국민신문고와 구청, 서울시 등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고 법무법인에 법률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이들의 답변 역시 소장의 판단과 다르지 않았다.
관리책임자로서 강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동원하는 현명한 대처를 해냈다.
현재 해당 단지에선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져 검찰 고발 등 공사 저지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상태다. 난관은 계속되고 있지만 깨어난 입주민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가 사표를 내고 나와 버렸다면 누군가가 후임자로 들어갔을 것이고, 그 후임자도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수 있다. 그런 식의 폭탄 돌리기가 계속됐다면 해당 아파트 단지는 최악의 파국을 맞았을 것이다. 공사가 강행됐다면 관련자들은 법적 처벌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입주민 역시 큰 손실을 입었을 게 불을 보듯 훤하다.
무엇보다 아파트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에 대한 입주민들의 불신과 분노가 단지에 차고 넘쳤을 수도 있다.
불합리에 대한 대응은 어디까지인가? 최명국 소장이 그 해답의 단초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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