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이제 살아온 인생을 멀리서 바라보아야 할 때다.
병신년도 가고 정유년이다. 떠날 때를 알고 물러날 때를 아는 건 나목이 아니더라도 참으로 위대하다.
나도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다정히 손잡고 눈 내리는 오타와의 밤거리를 거닐고 싶다는 그 옛날 캐나다의 트뤼도 수상은 얼마나 멋졌던가. 그의 아들이 또 수상이 되었다지. 이제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라고 뉴질랜드의 키 총리도 관저를 떠난단다. 가장 행복한 것 중의 하나가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때라고 했다. 밥상 위의 국가대표 된장국에 김이 솔솔 나면 천국이 따로 있겠는가. 인생은 가까이서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가.
월급을 안 올려주는 대신 밤에 잠을 많이 자라고 경비원에게 선심을 베푸는 감동이 있어도 착한 경비원이 자라고 잠이 들더냐. 누구 네의 수십억 수백억 들먹이지 말고 최저임금 시간당 440원 오른 정유년에도 그저 부디 몸 건강하고 가정 가정마다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끝까지 책임지는 노아의 방주는 텅텅 비어도 탈 수 없는 이것이 비극이요, 희극이다. 그래, 비극도 희극도 진통 없는 탄생이 어디 있으랴. 
오늘 너와 나의 이 고단한 아픔이, 오늘 우리 모두의 이 핏빛 진통이 정유년 닭의 해를 더욱 빛나게 할 통과의례 진군의 나팔소리가 되기를 빌어본다.
정유년에는 놀랄 일들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첫사랑의 첫키스처럼 가슴 설레고 심장 두근거리는 좋은 일들만 많았으면 정말 좋겠다. 사마귀가 당랑권을 휘두르고, 스님이 소림권을 휘두르고, 애주가가 술이 취했다고 취권을 휘두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의 태극권과 너의 팔극권이 신경풍선확장술이 되어 소통과 화합을, 나의 영춘권이 시처럼 흘러 보리청정심이 되고, 너의 금나법이 재물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보듬는 둥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여명의 새벽기도가 새파랗게 길을 내고 산모가 마지막 힘을 다하는 옥동자로 시뻘건 일출이 오늘도 동해를 장엄하게 물들인다.
정유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은 누가 뭐래도 하늘이 선택하고 점지한 사람들이 아닌가. 팔괘내공으로 쓰러진 술병을 혁명처럼 세우자.
돈줄이 끊기면 여의도의 정치도 한 물 가고 조폭의 큰 형님도 필요 없다던데, 월영지 겨울 배롱나무가 가진 것 하나 없이 벌거벗은 저 맨몸의 연리지로 무슨 사랑을 하기에 한겨울에도 저렇게 하얀 입김일까.
아무리 200년의 인연이라 해도 왜 아직도 저리 애타도록 뜨겁게 보일까. 낮술도 하지 않았는데 나도 대낮에 저런 사랑 한번 할 수 없느냐고 월영지의 하늘을 향해 억지를 부려본다. 행복에 관한 배롱나무의 조언이 비바람 몰아쳐도 재지 말고 눈치 보지 말며 직진하라는 뜻인가 보다. 시대의 칼바람이 몰아쳐도 결국 당신의 삶은 당신의 것이고, 궁핍한 시(詩) 한 줄로 연명을 해도 당신의 인생은 당신의 것이라고.
벌써 암탉이 알을 품었다.
사랑과 화합의 정유년에는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배롱나무의 연리지보다 더 붉게 더 뜨겁게 사랑으로 박수치고 헹가래 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 할 정유년에는 모두가 노래하며 춤추는 윤도현의 ‘나는 나비’가 되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기를 기도해본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앞길도 보이지 않아
나는 아주 작은 애벌레 살이 터져 허물 벗어
한 번 두 번 다시 나는 상처 많은 번데기
추운 겨울이 다가와 힘겨울지도 몰라
봄바람이 불어오면 이제 나의 꿈을 찾아 날아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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