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잘못은 서로 바로 잡아주며(過失相規), 예의범절의 풍속을 서로 권장하고(禮俗相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로 도와준다(患難相恤).
향약의 4대 강목이다. 향약은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향촌사회에 보급해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고, 미풍양속을 진작시키며, 상부상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약이다.
조선시대 초기 양반 지배세력이었던 훈구파는 농촌사회에 대한 수탈과 비리를 일삼았다. 이에 향촌사회가 동요하자 새롭게 등장한 사림파는 훈구파의 통제수단으로 악용됐던 경재소와 유향소의 철폐를 주장하고 대안으로 향약의 보급을 제안한다.
이런 개혁안은 급진적이고 배타적인 사림파에 반감을 가진 당시 기득권층과 중종에 의해 기묘사화를 당하며 조광조의 몰락으로 좌절됐지만, 선조 때 다시 사림파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서원을 중심으로 본격 보급됐다.
향약은 나중에 조선시대 양반사회의 지배체제를 하층민에게 강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으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 공동주택의 질서를 관할하는 관리규약은 향약에서 그 근본정신을 볼 수 있다. 더 멀리는 원시적 공동 노동사회를 구성하고 상호협력과 감찰을 목적으로 조직된 두레에서도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공동주택 관리규약’은 아파트로 대표되는 현대적 공동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엔 공동주택관리법을 비롯한 관련 법규들이 모두 망라돼 있으며, 법적 구속은 없지만 입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서로 존중하고 지켜야 하는 윤리와 예절에 관련된 내용도 포함돼 있다. 소송 등의 다툼을 벌일 땐 법률적 판단을 좌우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아파트의 헌법 같은 강력한 존재다.
수많은 단지들의 관리규약에 모태가 되는 게 17개 광역시도에서 만드는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이다. ‘준칙’엔 공동주택을 관장하는 공무원과 주택관리사, 입주민 및 관련업체들의 노하우가 총 집대성돼 있다. 관계되는 모든 이들의 땀과 정성과 혼이 깃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준칙만으로 1만5,000여 개에 달하는 전국의 아파트 단지를 직접적으로 규율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비의무관리 단지를 포함하면 3만여 개에 이른다)
그래서 공동주택관리법엔 시도지사가 관리규약 준칙을 만들지만 세부 내용은 (상위법령에 위배되지만 않는다면) 각자의 실정에 적합하게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준칙은 ‘참고서’인 것이다. 서울시의 준칙에 좋은 내용이 있으면 제주도에 있는 아파트에서 도입할 수 있고, 강원도에 모범적인 게 있다면 부산 아파트가 따올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해 경기도의 아파트 단지들이 관리규약을 개정하는 데 고초를 겪었다. 도에서 만든 준칙을 일부 변경해 고유의 특성에 맞게 개정하려던 관리규약 개정안이 모조리 지자체에 의해 반려됐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준칙을 100% 따르라는 ‘권고’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아파트 입주민과 주민대표, 관리종사자와 업계 관계자들이 갈등을 겪으며 저항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곧 경기도에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 심의위원회’가 설치된다. <관련기사 1면>
도와 대한주택관리사협회 경기도회 그리고 김지환 도의원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숙의한 끝에 선진적 방안이 탄생했다. 성장통을 겪은 끝에 더 좋은 결실을 맺었다.
역시 비온 뒤에 땅이 굳는 법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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