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년 사

 

 

붉은 닭의 해. 정유년 아침에 불타는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닭은 새벽의 전령입니다. 검은 어둠 속에도 암흑의 절망을 뚫고, 새벽이 다가오고 있음을 가장 먼저 알리는 여명의 나팔수입니다. 액운과 귀신을 쫓아내는 작지만 용맹스런 수호신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지어내 닭과 여성을 동시에 능욕해 왔습니다.
서양에서도 인간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경쟁을 ‘치킨게임’이라 이름 붙여 닭을 미련한 동물의 대명사쯤으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중국 지린성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등장하는 닭의 모습은 고구려인의 기상을 보여주는 듯 늠름한 자태를 뽐냅니다.
평안도 강서고분 내부에서도 고구려 벽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사신도를 볼 수 있습니다. 동쪽의 청룡도, 서쪽의 백호도, 남쪽의 주작도, 북쪽의 현무도는 사방에서 우리 민족을 지켜주는 네 신을 상징합니다. 그 중 주작은 전설 속의 새 봉황을 그린 것이지만 그 모양은 닭을 본 뜬 것이라 하니 우리 민족에게 닭이 얼마나 중요한 영물인 지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닭은 온 생애를 오로지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평생토록 고생해 낳은 알을 모두 인간에게 바치며, 죽어서도 온 몸을 남김없이 인간의 건강을 위해 헌납합니다. 또 병아리는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로 그 자체가 예쁘고 사랑스러운 인간의 아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고 공교롭게도 지난해 말부터 조류인플루엔자라는 병에 걸려서, 또는 병에 걸리진 않았지만 근처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닭과 오리들이 ‘살처분’이란 이름으로 학살당했습니다. 그 숫자가 무려 3,000만 마리에 이릅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닭과 오리가 학살당할 지 알 수 없습니다.
생매장의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라고 합니다. 죽음의 순간을 맞닥뜨린 그들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손수 키운 동물의 비참한 최후를 목격하는 양계 농장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 있는 생명을 거대한 자루에 담아 땅에 매장하는 포클레인 기사들도 일을 치르고 나면 작지 않은 정신적 외상을 입는다고 합니다. 살처분에 따른 보상금이 정부로부터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양계장 주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비명횡사한 동물에 대한 참담함과 미안함 때문이었겠지요.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심했기에 그리 상심했을 지 우리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너무나 자주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해 왔습니다. 이번 사태도 자연의 재앙이라고만 단정 짓기엔 정부의 허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닭에 빗대 ‘치킨게임’이라 부르다니요. 닭의 해에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건 참으로 민망한 일입니다. 인간의 방만과 오만이 죄없는 닭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이제부터 그런 만용과 무모함은 ‘치킨게임’이 아니라 ‘피플게임’입니다.
정유년 새아침, 새벽의 정령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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