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가야 더 좋은 그곳, 40계단 그리고 동광인쇄골목

테마여행 이채영l승인2017.01.04 18:00:45l수정2017.01.09 14:13l10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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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채 영  여행객원기자
여행비밀노트(http://chaey.me)

 


그냥 봐도 좋은 곳과 알고 봐야 좋은 곳이 있다면, 부산의 40계단은 후자다. 어쩔 수 없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 이해하기에는 40계단의 시대는 너무나도 멀다. 한국전쟁은 반세기 전의 일이고, 40계단을 다시 화제의 주인공이 되게끔 만들었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개봉한 것도 이미 16년 전의 이야기다.

 40계단

1999년생 아이돌이 TV에 나오는 시대에 1999년 작 영화는 어쩌면 고대 유물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40계단을 이야기하면서 박중훈, 안성기, 장동건이 출연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빼놓을 수는 없다.


샛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떨어지는 빗방울. 굵어진 빗줄기 사이로 등장하는 남자와 붉은 선혈이 빗방울에 섞여 흘러내리는 가운데 흐르는 비지스(Bee Gees)의 홀리데이(Holiday). 한국 영화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강렬한 오프닝 시퀀스의 배경이 바로 40계단이다. 영화가 개봉한지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현재의 40계단은 영화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빗속의 남자를 거울처럼 비춰내던 삼화 이용원의 문과 계단 옆 건물의 좁은 난간도 그대로다.
요즘에야 영화 촬영지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40계단은 한국 전쟁 당시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는 곳이다. 계단 일대에는 피난민들이 거주하던 판자촌이 있었고, 피난민과 노동자들은 항구나 시내로 가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계단을 오르내려야만 했다. 가파르고 고단한 삶의 길이었던 셈이다. 세월이 흐르며 폭이 4m에 달하던 계단은 점점 줄어들어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본래의 40계단에서 남쪽으로 25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계단에 다시 40계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1993년 8월 ‘40계단 기념비’를 세웠다.

계단 앞쪽으로는 40계단 문화관광테마 거리가 조성됐다. 거리는 대화재 전의 옛 부산역과 피난민을 실어 나르던 부산항을 주제로 꾸며졌다. 거리 곳곳에는 40계단이 생겼던 1950~60년대의 생활상을 재현하는 조형물과 소품이 놓였고,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주인공이 돼 볼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됐다.
40계단 문화관도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부산의 역사와 피난민의 생활상,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둘러볼 수 있다. 40계단 문화관광테마 거리는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중앙동역 13번 출구에서 바로 이어진다.

 


    동광인쇄골목

40계단 맨 꼭대기에 올라서서 왼편을 바라보면 눈에 띄는 벽화가 있다. 벽화에는 책과 연필, 그리고 ‘인·쇄·골’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동광인쇄골목 벽화거리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중앙~동광동에 걸친 인쇄골목은 1960년대 초 신우정판과 동양정판 그리고 대청동 서라벌호텔 뒤편의 자문정판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이들을 필두로 인쇄 관련 업체가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고, 1970년대 초부터 국제시장 대청동 입구와 구 시청 주변에 있던 업소들이 이전해오면서 비로소 인쇄 관련 업종 200여 개소가 한 곳에 모여 있는 전국 최대의 인쇄 골목이 완성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매체 및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걷고 있긴 하지만 전국에서 손꼽히는 인쇄골목이라는 것만큼은 변함없다.

 

이곳에 벽화가 그려진 것은 2012년. 제2회 거리 갤러리 미술제가 진행된 것이 계기다. 벽화거리는 천(天)·지(紙)·인(人)을 주제로, 부산기상관측소 주변의 하늘(天) 거리, 인쇄골목을 중심으로 한 종이(紙) 거리, 40계단을 중심으로 한 사람(人) 거리로 조성되어 있다. 하나의 길을 따라 작품이 내내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골목 중간 중간 볼만한 그림과 조형물이 설치되돼 있는 식이다.
40계단 옆의 좁은 골목은 종이(紙) 거리다. 낡은 건물 사이로 난 길은 생각보다 짧고 벽화 또한 그리 많지는 않지만 옛 부산의 정취를 느끼기엔 손색이 없다. 벽화를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대부분의 인쇄소가 쉬는 일요일 아침이다. 인쇄소의 셔터가 내려진 뒤에는 숨겨져 있던 그림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셔터 위에 그려진 그림은 벽에 그려진 것보다 더 유쾌하다.

 


인쇄골목의 마이다스라는 이름을 내걸고 ‘금박맨’, ‘은박우먼’, ‘저버보이’를 외치는 그림처럼 말이다. 인쇄골목에서 보수동 쪽으로 걷다 보면 나오는 ‘동광동 고바우’는 만화책을 찢어서 벽에 붙여놓은 것 마냥 재미있다. 1960~90년대 김성환 화백의 4컷짜리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을 소재로 한 것인데, 세대 간의 소통과 인쇄골목의 역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더욱 의미 있는 작품이다.
<동광동 고바우>는 2012년 진행된 제2회 거리 갤러리 미술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지만 건물 위쪽에 설치돼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우니 주의할 것.
- 주소: 부산시 중구 동광동 19-1 일원
-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중앙동역 13번 출구

 

이채영  kslee@ha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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