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마주보고 달리는 두 대의 자동차. 내가 덜 다치고 상대를 더 다치게 하려면 속도를 높여야 한다. 느린 쪽이 더 큰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운전자는 필사적으로 가속페달을 밟아댄다. 그에 따른 결과는 죽음뿐이란 걸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다.
한 사람만 핸들을 돌리면 둘 다 살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핸들을 돌린 쪽은 평생 겁쟁이, 비겁자란 오명을 뒤집어써야만 한다. 자존심을 일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두 수컷은 죽더라도 겁쟁이란 말을 들을 순 없다며 목숨 걸고 속력을 높인다.
인간은 그런 무모한 경쟁을 ‘치킨게임’이라 부른다. 정작 닭들은 그런 미친 짓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오만한 인간이 제멋대로 이름 붙였다.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세밑. 우리 가슴을 훈훈하다 못해 뜨겁게 만든 뉴스가 있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효율적인 운영과 관리비 절감을 위해’ 경비원 4명을 감축해 연간 4,000여만원을 절감키로 했다는 입주자대표회의 명의의 안내문이 붙었다.
그러나 경비원 감축안은 다음날 바로 취소됐다. 입주민 수십명이 입대의와 관리사무소에 “가족 같은 경비원을 입주민 동의도 없이 내보내지 말라”는 항의를 해 왔기 때문이다. “한 가구당 월 3,000원의 관리비 부담은 담배 한 갑만 줄여도 가능하다”는 입주민들의 온정이 연말에 거리로 내쫓길 뻔한 경비원들을 다시 품에 안았다.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는 세단도 SUV도 아닌 트럭이었다. 최종 집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밀어내기 등의 변칙수단이 동원되지 않는 한 현대자동차의 1톤 트럭 포터가 베스트셀링카를 거의 예약했다고 한다.
1톤 트럭은 자영업자의 차다. 나들이용으로 어울리지 않고, 대기업용으로도 부적합한, 오로지 소규모 사업과 장사에 필요한 차다. 승용차가 덜 팔리고 소형 트럭이 가장 많이 팔렸다는 건 그만큼 지난해 우리 사회와 국민이 불황 속에 힘들게 살아왔다는 증거다.
대한민국은 초밀착국가다.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서적으로도 구성원들이 강한 유대감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가깝게 맞대고 살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아파트다. 비좁은 땅 덩어리 안에 수평과 수직으로 달라붙은 집들을 짓고 참 많은 사람들이 오밀조밀 생활한다.
그런 밀집도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 사회를 만들었다. 집과 사무실은 물론 길거리에서도 무선인터넷이 생활화됐다. 식구들은 이제 TV를 차지하기 위해 리모컨 쟁탈전을 벌이지 않는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방송 이상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고, 외국으로 이민을 떠난 친구와도 실시간으로 대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 물론 당연히 무료다. 택시도 대리기사도 음식도 터치만 하면 곧바로 달려온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약속시간이나 장소가 어긋나 연인과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장면은 이제 옛날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일 뿐이다. 심지어 산골 오지에 있는 민박집이라도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으면 손님들의 외면을 받는 세상이 됐다.
아파트는 곧잘 닭장에 비유되곤 한다. 모양과 인구밀도가 상당부분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파트는 진화를 거듭해 인간에게 쾌적하고 안락한 삶을 제공해 주지만, 닭장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전염병에도 취약하다.
인간은 현명하다. 닭 역시 착한 심성을 지녀 치킨게임 같은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다.
정유년. 사람도 닭도 조금 더 행복해지는 해였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