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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석 춘 
서울 성북구 공동주택관리 자문위원
(행복코리아 대표)


‘본립도생’이란 ‘기본이 바로 서면 길이 또한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말입니다. 아파트는 여러 가구가 내는 관리비로 운영하는 공동체라서 자칫하면 오해와 불신을 초래하기가 십상입니다.
특히 동대표와 회장을 비롯한 입주자대표회의 임원들은 입주민들에게 오해를 살 행동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입대의 운영비도 투명하게 집행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입주민들의 ‘신뢰 구축’이 아파트 운영관리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입대의 회장을 맡으면서 있었던 일을 소개합니다.
세 가지 면적의 15개 동에 1,253가구가 거주하는 14년차 아파트는 중앙난방으로 돼 있어서 입주 초기부터 수차에 걸쳐서 개별난방 추진을 시도했으나 번번하게 실패했습니다. 전철역도 가까워서 교통도 편리하고, 작은 산과 인접해 있어서 공기도 맑고 환경도 쾌적하나 중앙집중식 난방이라서 인근 아파트보다 시세도 상대적으로 낮고, 매물이 나와도 사려는 사람도 드문 형편이었습니다.
저는 회장을 맡으면서 첫해에는 어린이놀이터와 첨단 CCTV를 민원 없이 설치했고, 이듬해에는 외부도색을 추진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입주민들이 ‘당신이 회장을 맡을 때에 아파트의 숙원사업인 개별난방을 추진하라’는 의견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외부도색을 위한 사업자선정 직전이었고, 솔직히 말 많고 탈 많은 ‘개별난방 추진’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장기수선충당금에 여유가 있어서 입주민은 보일러 설치만 개별부담으로 하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3월 말에 입대의에서 전원 찬성으로 개별난방을 의결하고, 4회에 걸친 주민설명회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질문에 답변하면서 ‘단돈 천원이라도 투명하게 사용하겠다’고 호소했으며, 극소수의 ‘무조건 반대론자’들을 이해시키면서 4월 1일부터 ‘개별난방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입대의 사무실을 폐쇄하고 관리사무소의 응접실에서 업무를 처리하면서 관련 업체와는 관리사무실 이외의 장소에서는 단 한 사람도 접촉하지 않고,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업무를 추진했습니다. 그런 저의 진심이 통했는지 4월 말에는 전체 입주민의 80% 이상이 찬성한 동의서를 구청에 제출해 5월 초에 행위허가를 받았습니다.
시공업체 선정도 전 입주민들이 처리과정을 공유하면서 투명하게 보여줬으며, 보일러는 입주민들이 자유롭게 선정하고 가격결정도 입주민이 참여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했습니다. 단 한건의 민원도 없이 10월 말에 개별난방 시운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니 아파트 관리비는 대폭 절감됐고 아파트 가격은 올랐습니다.
이처럼 ‘본립도생’을 통한 ‘신뢰 구축’이 아파트 관리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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