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본지 류기용 명예회장이 지난 8일 갑작스런 뇌출혈을 일으켜 아직 병상에 있습니다. 이에 과거 그의 칼럼을 모은 ‘한국아파트신문 칼럼 100선’ 책자에 실린 글들을 다듬어 재연재하기로 했습니다. 류 명예회장의 쾌유를 기원하며 아울러 관심 있는 독자 여러분의 필진 참여를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류 기 용 명예회장

 

글을 쓰다 보면 때로는 정의와 불의,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천 사이에서 적지 않은 갈등을 겪게 되고 그때마다 어찌해야 하는가, 무엇을 좇을 것인가, 어떤 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져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때 간혹 망설여지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게 되곤 하는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 앞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까닭이리라.
특히 주택관리 업계처럼 각종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는 경우 사정은 더욱 복잡해진다. 예컨대 법령이나 제도를 거론할 때마다 협회나 주무부처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정책수행이나 실정법의 이행 여부를 검증, 촉구할 때마다 일선 행정기관과의 마찰을 피해 나갈 도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논리정연한 정책대안이나 의견개진을 한다 해도 일부 정치권이나 사회 일각에서는 ‘이익집단의 쉰 목소리’라고 몰아붙이며 폄하하기 일쑤다.
어디 그 뿐인가. 현행 위탁관리제도의 모순을 거론할 때마다 업자들의 노골적인 비난을 감수해야 하고 입주자대표의 허구성을 지적할 때마다 거센 반발에 진땀을 흘려야 한다. 특히 국가공인 전문자격사인 주택관리사의 자질 문제를 언급해야 할 경우에는 원색적인 비난이나 육두문자의 폭격을 넘어 가히 목숨까지 담보해야 할 만큼 사태는 절망 쪽으로 치닫게 된다.
이렇게 온통 사면초가의 정황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어리석고 부질없는 짓이라 여겨져 글쓰기를 집어치우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때로는 채찍으로 또 어떤 때는 강렬한 빛으로 다가와 힘이 돼 주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조해일의 연작소설 ‘임꺽정에 관한 일곱개의 이야기’ 중 마지막 일곱 번째 이야기에 적혀 있는 마지막 대목이었다.
비록 의적(義賊) 또는 협도(俠盜)라 불리기는 했어도 한낱 불학무식(不學無識)한 도적의 괴수에 지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그가 기생집 애인인 여옥으로부터 언문(諺文)을 깨쳤다는 사실하며 허순이라는 선비의 근기야록(根機野錄)에 적혀 있다는 그의 문장론(文章論)이라고나 할까.
그가 남긴 글 한 편은 어법이니 문법이니 하는 일체의 작위를 떠나 글줄이나 한다는 이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실로 천하의 절창(絶唱)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임꺽정이 썼다는 예의 그 문장론을 다시 한 번 꺼내어 본다. “알고 보니 글이라는 것이 본디 말을 옮겨 적는 것. 바른 말을 적으면 바른 글이 되고 그른 말을 적으면 그른 글이 된다. 또한 말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 바른 말은 바른 생각에서 나오고 그른 말은 그른 생각에서 나올 터이다. 그러니 세상에는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글이 있고 그른 생각, 그른 말, 그른 글이 있을 터이다.
헌데 이치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듯. 세상에는 바른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숨겨 그른 말, 그른 글을 짓는 이가 있고 이와는 반대로 그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꾸며 바른 말, 바른 글처럼 보이도록 하는 이가 있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대저, 이를 두고 거짓말, 거짓 글이라 하겠으나 도대체 이 뒤틀림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중략…다 까닭이 있겠으나 생각컨대 이는 오로지 그 사는 일이 바르지 못함에서 비롯한다 하겠다 하면 아! 바른 글을 짓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고. 세상일 모두가 한 가지 이치로구나”
임꺽정의 이 글을 읽고 난 선비 허순은 그 말미에 자신의 짤막한 소감 한마디를 남겨 놓는다.
“이것은 한낱 도둑의 글에 지나지 않으나 그 참됨을 가지고 논할진대 그 어느 명문 재상의 문장도 이에 미친다고는 할 수 없다”
이제 다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아직도 바르게 산다는 그 쉽고도 당연한 이치 하나 철저하게 터득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무지와 오만을 돌아보면서 이제부터라도 바른 생각, 바른 글이 절로 우러나올 수 있는 ‘바른 삶’을 이뤄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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