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언제나 그랬듯이 부대끼고 몸부림치며 동동거리는 연말은 천차만별의 새로운 삶을 위한 밑거름이요, 마중물이다.
먼 훗날 뒤돌아보면 알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가 촛불을 밝히고 가슴 아파했던 절규의 일들이 새로운 씨앗이 되고 꽃을 피우기 위한 천둥과 번개였다는 것을.
최루탄과 화염병과 물대포가 공화국을 수없이 아프게 해도 싹은 돋아 녹색의 땅을 기름지게 하여 쌀을 남아돌게 하고 틀면 먹방이 아닌가.
더욱 상처받고 더욱 세게 치지 않으면 팽이는 꼿꼿이 서지 않는다.
아픔이 두렵다 해도 허물을 벗지 않고 나방으로 어찌 날 수 있으랴.
하늘에 눈물이 없이 어찌 무지개가 뜰 수 있을까.
영화 ‘록키’의 명대사란다.
‘인생은 얼마나 센 펀치를 날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얻어맞고도 계속 움직이며 나아갈 수 있느냐’라고 말이다.
나아가기 위해선 지그재그도, 때로는 뒷걸음도 필요하고 나아가기 위해선 때로는 타협도, 때로는 조율도 필요하리라.
인맥(人脈)과 혼맥(婚脈)이 없어도 우리에겐 튼튼한 동맥과 정맥이 있질 않느냐.
공복(公僕)이 가신(家臣)이 되고 공익(公益)이 사익(私益)이 되는 이해타산의 빠른 셈법이 난무해도 욕심은 업이 되고 순리는 덕이 되며 나누면 커진다는 연말이다.
세월이 흘러도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잔고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이어라.
어느 영세 빵집 사장님이 금강복지관에 빵 1,000개를 가져왔단다.
노인이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빼빼로 데이에는 어느 누군가가 빼빼로를 많이도 가져왔었지.
영혼을 잃은 부는 천만 악의 뿌리가 되며, 누구의 편에다 인생을 잘못 걸면 천길 벼랑으로 추락하는 걸 많이도 보아왔다.
준 것도 받은 것도 기억이 안 난다는 기억상실증 환자가, 청문회가 아니더라도 어느 부류에 제일 많이 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아니한가.
풀었다 당기고 당겼다 풀어주는 얼레처럼 우리들의 피곤한 일상이 장자의 나비처럼 사랑이 되어 하늘을 기어오르는 방패연이 되고 가오리연이 된다.
강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는 그 까닭은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었지.
강물이 바다로만 흐르는 그 이유가 돌아오지 못할 서러움 때문만도 아니라고 했었지.
별도의 독대가 아닌 서로가 얼싸안을 쿵쿵거리는 가슴 때문에, 저마다의 속도로 오늘도 출렁이며 흐르는 것이 아닐까.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서 멈추어야 할지 모른다 해도, 먼 길을 돌고 돌아서도 결국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가는 너와 나는 자연과 세월이 만든 강물이요, 걸작이다.
때가 되면 무리를 떠나 혼자의 길을 가는 밀림의 코끼리처럼 병신년도 가고 우리도 간다. 불치병이 아니고 항노화의 특별처방전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시한부다.
거짓말하면 피노키오의 코는 길어지고, 심술을 부리면 혹부리영감의 혹이 커진다 해도 ‘늑대야’라고 소리치며 달리는 양치기 소년처럼 세월이 빠르게도 달린다.
12월이다. 송년의 술잔도 너무 취하면 권력에 취한 사람처럼 제정신이 비틀거릴지도 모르니 조심해야겠다. 술 없는 문학의 밤이 있었고, 동창 모임에는 실비통술로 1차만 했다.
말초신경이 분칠을 하고, 거세된 내시의 미소가 세일의 꼼수처럼 칠갑을 한다 해도 마지막 손을 내밀 사랑도 시간이 촉박하다.
머뭇거리면 살점을 요구하는 냉혹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찾아올지도 모르니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조건 달지 말며 서두는 생략하고 사랑한다고 말하자.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친정 엄마와 2박 3일의 ‘엄마 사랑해’뿐이겠는가.
그리워서 괴로움이 온다 해도, 불리하더라도 말을 바꾸지 말고 큐피드의 화살을 날려 보내고 바보가 되자.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