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상 그대로의 자유 산

테마여행 이성영l승인2016.12.21 18:00:30l1006호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발왕산

한계령 어딘가 혜성이 비껴 지나가는 눈 쌓인 화전민 마을에서 서로의 가슴에 별을 묻다.

나무들도 잎을 떨군 지금, 낙엽조차 계절에 익숙지 않은지 그만 바람에 숨어버린다. 가을걷이 끝난 시골의 논밭이거나 도심의 골목길로 바람이 내 달리는 건조한 풍경들. 눈이라도 내려야 겨울 맛이 난다. 눈밭을 헤치며 걸어야 겨울 맛이 난다.
눈 내린 산은 통통하게 꽃과 잎을 감싸 안은 나무의 아린 속에 움터오는 속살들의 냄새. 덤불 속에서 들리는 산새들의 낮은 울음소리와 어디선가 공기를 가르며 선명하게 들리는 장끼의 울음은 메아리로 남아 코 끝 시린 청아한 겨울을 더욱 겨울답게 한다.
설화 만발한 장쾌한 능선은 포근한 낮의 기온으로 빙화의 터널을 만드니 새파란 하늘아래 눈이 부시다. 눈이 오다 그치고 다시 겹겹이 쌓이니 겨울산은 하얀 구름과 수평을 이루며 끝없는 설원을 만든다.

 

▲ 무등산


공간에서 다시 만나다

인생의 길 중에는 실제 존재하는 길과 어떤 공간에서 만나는 길도 있다. 바위를 타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능선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설악산 천화대의 ‘석주길’처럼 뭔가 가슴 저린 사연을 안고 있는 길들이다.
1960년대 말 요델산악회 소속이던 엄홍석, 신현주, 송준호는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친구와 연인사이의 묘한 관계로 인해 사랑보다는 우정을 위해 송준호는 그들의 곁을 떠난다. 이후 엄홍석, 신현주는 설악산 천당폭에서의 빙벽등반 중에 신현주의 실족으로 인해 빌레이를 보고 있던 엄홍석 마저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한 자일에 묶여 추락한다.
두 친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송준호는 1969년 설악골에서 천화대로 이어지는 암릉을 처음으로 개척했다.

▲ 한라산
▲ 북설악

이후 그 루트의 이름을 엄홍석과 신현주의 이름 끝 자를 넣어 ‘석주길’이라 붙이고 동판을 만들어 천화대와 만나는 바위봉우리 부분에 붙여 두 사람의 영전에 바친다. 그리고 송준호 역시 1973년 토왕폭을 단독으로 오르다가 실족사 하니 그의 시신은 친구인 엄홍석과 신현주의 곁에 묻히게 된다. 그렇게 석주길의 슬프기도 하며 아름다운 실화가 전설처럼 태어났다. 이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한 송이 꽃으로 감싸 안고 있는 듯, 하늘에서 꽃이 내려앉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천화대(天花垈)이니 공간은 인연으로 이어진 시간이다.
도토리를 까먹으며 설악산 오솔길을 다리쉼 하노라면 한껏 남는 것은 머루 다래를 실컷 먹고픈 소박한 욕망일 수도 있다는 진교준 시인의 ‘설악산얘기’는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할 수 있어 산이 좋다고 했다.

산에는 
물, 나무, 돌 
아무런 오해도
법률도 없어
네 발로 뛸 수도 있는
원상 그대로의 자유가 있다.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나는
고래고래 고함을 치러 온 건지도 모른다.

시인이 어린 나이에 산에서 느낀 감정들이다.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에 해골이 있어 바이런의 술잔을 만들어 철학을 부어서 마시자고 했던 자유시인은 말년에 쌍문동에서 버스 운전을 하면서도 그 기개를 감추지 않았다고 어떤 이는 회고한다.

산은 숨길 것 없이 드러내고 숨어있는 이야기들도 하나 둘씩 모닥불 속에 타 들어가는 겨울산은 맑고 깨끗하다. 순수하다. 이순원의 소설 속 한계령 어딘가에 있다는 혜성이 지나가는 눈 쌓인 화전민 마을. 은비령 그곳에 비껴 지나가는 별을 서로의 가슴에 묻고 묻어둔 이야기도 타임캡슐처럼 다시 묻어두고 싶은 하얀 겨울 산이다. 우렁차고 순수한 겨울 산은 태백의 준령들을 걷는 내내 공룡능선의 푸른 달빛 아래 철쭉꽃도 피게 만들고 능선으로 지나는 안개 속에서 하얀 억새물결도 만든다. 구름이 가다가도 눈밭에 멈추어 있는 공간이 그립다. 산은 변함없이 그곳에 있는데 문득 산이 그리운 날이다.

이 성 영  여행객원기자
laddersy@hanmail.net

 

이성영  kslee@hapt.co.kr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한국아파트신문 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2-727)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3동 222-8 코오롱빌란트2차 705호 (주)한국아파트신문
대표전화 : (02)884-5445  |  팩스 : (02)884-5995  |  등록번호 : 공보 다 04289  |  발행인 : 황용순  |  편집인 : 이경석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경석
Copyright © 2002~2017 (주)한국아파트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