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해간다. 그래서일까. 12월이 돼서야 불이나케 한 해를 마무리하지 않아서 붐비거나 조급하지 않게 풍경이 변했다. 우선 나만 해도 10월경부터 준비해 한 해의 마무리를 짓기 위한 준비를 한 다음, 11월경에 결과물이 나오도록 한다. 그러자 하니 자연스럽게 12월에는 결과물을 두고 축하를 하거나 한 해를 무탈하게 잘 지냈다는 식사 자리로 이어진다.
공적인 행사가 마무리되고 나면 사람들은 개인적인 안부를 묻거나 오래 만나지 못한 지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 평소보다 조금 나은 음식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눈다.
오늘 나도 대치동의 한 음식점에서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 세 부부와 식사를 하는 날이다.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걷고 싶은 마음으로 전철을 이용하는데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이 몇 정류장 앞에서부터 내릴 준비를 한다. 대체로 같은 음식점으로 가는 모양새다.
나는 이런 날 귀를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노인석의 주인공들은 대충 80세가 족히 넘은 듯한데 그들도 여전히 여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누구는 피부 관리를 하러 전혀 다니지 않는 것 같다는 둥, 누구는 몰라보게 늙었다는 둥 대체로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오래 살다가보면 사는 지역이 멀어지기도 하고 사는 형편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더도 덜도 말고 동창회 갈 만큼만 살라는 속설도 있다. 이는 당사자나 가족이 아파도 곤란하고 동창회비 낼 형편이 못돼도 곤란하고, 행색이 너무나 초라해서 보여주고 싶지 않아도 곤란하다고 하니, 그 말이 그리 어긋난 말은 아닌 듯 하다. 나는 점점 그들의 말에 젖어들어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귀를 세운다.
나는 사람들의 말에 흥미가 동해서 듬직하게 나이든 남자들이 무리지어 서서 두런거리는 자리로 이동해 귀를 모았다. 동창 누가 어디서 어쩌다가 죽었다느니 그 나이에 명줄 당기려고 환장했는지 아무리 봐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여자를 만나러 다닌다고 히죽거린다. 늙거나 젊거나 여자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우고 남자들은 여자이야기로 뒷품을 보여준다. 
소위 문지방 넘을 힘만 남았어도 남자는 여자를 넘본다는 말이 진실일 것도 같다.
누군들 늙고 싶겠는가, 누군들 일선에서 물러나고 싶겠는가만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한다. 귀신에 홀린듯 허욕에 휘둘리다가 70에 이르면 귀신을 부릴 나이라 하니, 그 나이도 지나 힘에 부치면 못다 이룬 욕망이 꼬리를 친다. 아무리 감추어도 드러난다. 거리에서, 텔레비전에서, 백화점에서,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 사람이 사는 게 힘에 부치는 노인의 눈에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한숨이 나온다는 말도 듣는다. 할 수만 있다면 죽기 전에 아름다워 보고 싶다는 노인의 증언도 듣는다. 무엇 때문에 사랑받지 못했는지도 모르고 오직 아름답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확인된다.  어디 남들 뿐인가.
나는 12월의 풍경 속에서 평소와 다른 나를 발견했다. 전날부터 피부가 조글거리지 못하게 물을 주기적으로 마셨다. 미세 먼지가 있는 날에는 약간의 몸살기가 도지기는 하지만 그것을 빙자해 잠을 충분히 잤다. 게다가 수건을 뒤집어쓰고 자면 보습효과가 탁월하다기에 애써 수건을 뒤집어 쓰기도 했다. 툭하면 컴퓨터 앞에 앉다가보니 자칫하면 열기를 받아서 얼굴이 바싹 마르기도 하고 까칠해지기도 해서 꿀 한 점을 찍어 급하게 얼굴에 대고 문질러 조금 촉촉하게 만들기도 했다.
형이상학적 이야기는 이런 날 필요하지 않다. 마지막 달에 정서의 쓰레기통을 비우기 위해 나들이 가는 날, 인간의 양면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해주고 긍정적 덕담을 주고 받으며 조촐하게 선물을 나누기도 했다. 너와 내가 조금이라도 섞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자고 손에 온기를 담아 악수를 하고 헤어진다. 이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살아서 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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