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아파트 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A씨는 가끔 몇 년 전 겪었던 일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밤잠을 설친다.
아파트 건설이 마무리 돼가는 시점이 오면 건설사는 현장에 입주지원센터를 개설한다. 이곳에 소속돼 일하는 미화원들은 입주예정자가 들어오기 전에 아파트 실내를 청소하는 ‘입주청소’ 임무를 부여받는다. A씨는 그해 겨울 경기도의 800가구 규모 신규 입주단지에서 입주청소 일을 했다.
입주청소는 보통의 청소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되다.
각종 건축공사로 난장판이 된 실내에서 청소를 하다 보면 온갖 먼지를 다 마시며 온몸에 뒤집어쓰기 일쑤이므로 일당도 다른 일에 비해 센 편이다.
입주청소는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된다. 공사를 마친 아파트를 입주예정자들이 미리 돌아보고 구경하도록 하기 위해 실시하는 ‘사전청소’와 해당 가구 입주예정자가 개별적으로 이사 들어오기 직전에 실시하는 ‘마감청소’, 그리고 입주해 들어와 살고 있는 가구에 하자가 발생해 해당 보수공사가 끝나면 집 안의 특정 장소를 청소해 주는 ‘하자청소’가 있다.
문제는 한 입주가구의 하자청소를 마친 날 오후에 발생했다.
청소를 마친 A씨가 탈의실에서 퇴근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입주지원센터에서 긴급호출이 왔다. 달려가 보니 낮에 하자청소를 마친 가구에서 거실에 놓여 있던-동전이 가득 들어 있었던-돼지저금통이 사라졌다는 것. 입주민은 A씨를 도둑으로 지목한 상태였다. 물론 A씨는 자신이 훔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흥분한 입주민 앞에서 그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CCTV를 확인해 본 결과 승강기를 탄 그의 손에 돼지저금통이 들려있지 않았음이 확인됐지만 입주민은 그것조차 믿지 않았다.
빗자루와 마대자루를 담기 위해 갖고 다니는 양동이 속에 돼지저금통을 숨겼을 거라 생각한 입주민은 끝내 경찰에 신고했다.
잠깐 조사받고 나면 모든 오해가 풀릴 거라 믿었으나 경찰의 심문은 간단치 않았다. 관리사무소장이 그날 그의 행적이 찍힌 CCTV 화면을 모조리 복사해 제출해 주고, 동료들도 탄원에 나섰다.
수차례 그를 불러 조사한 경찰은 결국 절도의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로 종결 처리했다.
그제서야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은 “평생 남에게 해코지 한 번 하지 않은 어머니를 도둑으로 모는 건 견딜 수 없다”며 입주민을 고소하겠다고 나섰고, 이를 말리느라 또 한동안 맘고생을 해야 했다.
무죄임이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더 이상 그 현장의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입주지원센터에서 그의 출근을 꺼리는 눈치였고, 무엇보다 그 역시 그 현장에 넌더리가 나고 말았다.
그 길로 입주청소를 그만 둔 그는 몇 달을 쉰 뒤 지금은 멀리 떨어진 다른 아파트에서 복도와 계단, 지하주차장 등 공용부분만 청소하는 일반 미화원으로 다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 겪었던 정신적 상처는 지금도 그대로 화인처럼 남아 가끔씩 그를 괴롭힌다.
간혹 강추위 속에 일하는 그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들어와 따뜻한 차라도 한잔하시라”며 붙잡는 입주민이 있지만 그는 이제 남의 집은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하필이면 그 모진 일을 겨울에 겪어서일까? 겨울만 되면 그의 몸이 더욱 움츠러든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