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김삿갓 문화큰잔치
백일장에서 조부를 한껏 욕되게 하는 글을 씀으로써 하늘도 용서 못할 죄를 지어 집도, 처자도 버리고 평생을 방랑한 시인 김삿갓. 그의 시대정신과 예술혼을 추모하기 위해 영월에서는 매년 10월 중순경 김삿갓 문화큰잔치가 열린다. 김삿갓의 묘역이 있는 노루목마을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추모제, 추모 살풀이춤, 추모퍼포먼스, 문화행사 등을 다채롭게 펼쳐 김삿갓의 삶과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김삿갓 선생의 해학과 풍류로 가득 찬 그 절묘한 시편들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겠다.

삿갓의 노래
정처 없이 떠도는 내 삿갓 마치 빈 배와 같이/ 한 번 쓰고 다닌 지 어느덧 사십 평생이어라/ 더벅머리 목동의 소몰이 갈 때의 차림새고/ 갈매기 벗하는 늙은 어부의 모습 그대로일세/ 술 취하면 의복 벗어 나무에 걸고 꽃구경하며/ 흥이 나면 손을 들어 누각에 올라 달구경 하네/ 사람들의 의관이야 겉모습 치장하기에 바쁘지만/ 내 삿갓은 비바람 가득 몰아쳐도 근심 걱정 없다네

나그네
천 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떠돌다 보니/ 주머니에 남은 돈이라곤 엽전 일곱 닢이 전부이네/ 그래도 너만은 주머니 속 깊이 간직하려 했건만/ 석양 황혼에 술집 앞에 이르니 어이 그냥 지나치리오

되는 대로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다면 옳거니, 그러면 그러려니, 그렇게 아세/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하고/ 장터에서 사고팔기는 시세대로 하세/ 세상만사가 내 마음대로 안 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살아가세

이 시는 한자의 운을 빌어서 세상사의 흐름을 나타낸 것으로 김삿갓의 뛰어난 재치를 다시 한 번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대나무가 쉽게 흔들린다는 것을 인용해 ‘∼대로’라고 묘사한 대목은 감히 누구도 상상 못할 재치라 하겠다.
청산
청산에서 잡았다가 청산에서 잃었으니/ 청산에 물어보아 청산이 대답을 안 하거든/ 청산이 죄가 있으니 청산을 당장 잡아오렷다

김삿갓이 어느 고을을 지나다가 그 지방 태수가 매를 잡았다가 놓치고 아랫것들에게 매를 잡아오라고 호통 치는 것을 보고 태수를 희롱한 시.

자탄
슬프다. 천지간의 남아들이여!/ 이내 생애 알아줄 이 그 뉘 있으리?// 부평초 삼천리 허랑한자취/ 사십 년 공부가 부질없었네.// 공명은 애써 안 되니 내 원 아니요,/ 백발이야 공변된 길 슬플 것 없네.// 고향 꿈 놀라 깨어 일어앉으니/ 월조도 남쪽 가지 삼경에 운다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꿈에 본 고향을 맥맥히 그리며 생애를 탄식하고 있는, 이 시인의 어두커니 앉아 있는 검은 그림자를 상상해 보라. 언뜻 보면 한 생애를 해학과 풍자로 허랑하게 보내버린 실없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겠으나 그 속속들이 깊은 곳엔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한숨의 한스러움이 서려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이 외에도 찾아볼 곳은 많으나 시성 삿갓 선생을 뵙는 영광으로 영월 편 답사기를 마치련다.
<끝>
※참고문헌: 시선 김삿갓의 한시/ 신영준, 옛 시정을 더듬어(상.하)/ 손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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