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국민 정신건강을 위해 될 수 있으면 정치 얘기는 피하고 싶지만 박 대통령 탄핵, 최순실 특검·국조 등 혼돈과 위기의 시국을 감안하면 그 또한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은 매우 엄혹하다.
우선 외교·안보 측면을 살펴보자. 최고의 민주 선진국 미국에서는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의심을 받는 파렴치한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물론 국민적 기대 속에서 다우지수까지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가 망언을 쏟아내는 ‘괴물’에 대한 혐오를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동맹보다 실익을 챙기겠다는 ‘트럼프주의’를 주창하는 그가 ‘안보 무임승차론’을 앞세워 조여올 압박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전시작전권 이양, 사드 배치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동북아 지역의 역학관계에서도 불안정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드 불만에 한한령(限韓令), 금한령(禁韓令)도 모자라 민간 기업에 대한 보복도 서슴지 않는 치졸한 중국, 반한·혐한 시위가 끊이질 않는 반성 없는 일본,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마지막까지 몽니를 부리던 러시아…바야흐로 한반도는 경제와 군사력을 갖춘 주변 4강들의 첫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북한과 대만의 변수까지 있어 한국 외교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안보 또한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경제도 심각해 1년째 0%대 성장을 보인 국민총소득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태다.
지난달 18일, 프랑스 금융그룹 BNP 파리바가 자체 분석한 ‘트럼프 당선에 따른 신흥국 취약성 지수’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20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말레이시아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금리 상승’ 등이 한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무역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경제 상황 급변 때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준비 없이 ‘트럼플레이션’, ‘트럼프노믹스’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났으니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미국발 금리 충격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가계부채 만큼이나 위험한 자영업자 빚폭탄으로 민생은 파탄 직전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따른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고 있지만 그동안 ‘놀고먹는 국회’, ‘식물국회’라는 오명과 함께 국민의 신뢰도를 묻는 각종 조사에서도 부동의 꼴찌였다는 점에서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하긴 뭐 어디 국회뿐이랴. 다시 강조하지만 통계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을 비롯해 종교계, 교육계, 노동조합, 신문사, TV 방송국, 의료계, 중앙정부, 지방자치정부, 국회, 학계, 군대, 청와대, 시민운동단체, 대기업, 금융기관 등 16개 공공 및 민간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공공이건 민간이건 도대체 믿을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흔히들 난세에 영웅 나고 말세에 성인 난다지만 오락가락, 갈팡질팡, 허둥대기 바쁜 정치판을 보면 그런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야 할 것 같다. 지금의 이 나라는 박 대통령의 퇴진이나 최순실 세력의 일망타진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국가개조, 적폐청산, 비정상의 정상화 그리고 이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더 철저하게 무너져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 바로 설 수 있다. 슘페터는 말년의 대작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통해 ‘창조적 파괴’라는 말을 자주 거론했다. 그런데 창조적 파괴라 하면 다들 ‘창조’를 바라보지만 그 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파괴’이고 그 파괴의 대상은 다름 아닌 ‘기득권층’이라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 국회의원의 숫자와 임기 및 특권 줄이기,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의 결격사유 강화를 비롯해 사이비 종교, 전투적·귀족노조, 쓰레기 언론, 군산(軍産)비리와 군 기강 해이, 황제민원, 황제노역, 황당 갑질 등도 이참에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개·돼지가 아닌 ‘집단지성의 힘’으로 말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희생도 없이 어디서 무슨 희망을 찾을 수 있겠는가. 발전은 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의식의 창조적 파괴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때다. ‘우리를 죽이지 못한 시련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한다’(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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