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이제는 바다에 나가질 않는단다. 시퍼런 파도에 시달리며 자랐기에 맛과 향기가 더욱 일품이라는 진동만의 미더덕을 육지에서 깐다는 어머니.
‘오도독’하고 터지는 진동만의 미더덕이 우리나라 총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한다고 했었지.
사랑이 시들해지고 감탄을 잊어버린 인생이 낮게 엎드릴 때, 시비 앞에 서면 다시 바다처럼 설레고 가슴이 뛴다는 어머니.
마산 삼진 로타리클럽에서 그의 고귀한 삶을 기리기 위해 뜻을 모아 세웠다는 시비.  그 시비에 새겨진 해심 김명이의 ‘진동바다’다.

평생 바다를 섬겼네.
잔잔한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을 부르면
어머니 같은 진동 바다는
물안개를 휘감고 달려왔네.

너울거리는 저 괭이바다
그 너른 치마폭에서
미더덕 오만둥이 갯장어를 내 주었네

노을 꽃이 피는 곳
괭이갈매기 날개짓 따라 뱃길을 잡아가면
어부들의 황금어장이 눈앞에 있었네

노을을 싣고
갈대밭 사이로 달려가는 돛단배는
잊지 못할 생의 절경이었네

시비에는 ‘바다 은퇴식’과 ‘진동바다’라는 두 편의 시가 낭송 되고 있다.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롭다 하고, 어머니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자비롭다 했다.
바다는 앞에 있으면 앞 바다가 되고, 뒤에 있으면 뒷 바다가 된다. 바다가 울면 울음바다가 되고, 바다가 웃으면 웃음바다가 된다.
어머니도 그렇다. 모든 불경의 핵심은 자비로운 마음이요, 모든 성서의 핵심은 영원한 생명이다.
바다와 어머니도 그렇다. 백유경의 순리를 따르고 인내는 지혜의 동반자라는 말을 믿으며, 여기까지 왔나보다고 한 어머니의 숨결이 잊지 못할 생의 절경으로 시비에 헐떡거린다.
아직도 돌아가야 할 희망의 바다가 등대 아래 서성거리는 것 같아 달빛이 새파랗게 길을 내면, 등대 아래 갯바위가 식어도 방파제의 끝 빨간 등대로 향한다는 어머니의 진동바다.
어디쯤에서 들려오는 바다 밑 저 큰 숨소리는 미더덕이 큰다고 기지개를 켜는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시비 앞에 서서 들려오는 시 낭송에 귀를 기울인다.
서정의 쇼팽으로, 섬세한 브람스로 울려 퍼지면서 진동바다에 생명을 불어넣는  노스텔지아.
없어도 표 나지 않고 있어도 드러나지 않는, 깊은 산골의 한 송이 난초요 매화 같은 사람이 있으니 진동바다를 사랑한 어머니다. 그는 이름 있는 시인도 수필가도 아니지만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아닐까. 정말이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는 이런 것이 아닐까. 바다가 우리 모두의 바다이듯이.
삶이 버거워도 봉사 그 자체가 생활의 에너지가 되고 행복한 삶이 된다고 애양원과 요양원을 수시로 찾아다닌다는 어머니.
진동 광암에서 바다와 어머니가 하모니가 되어 바다가 쓴 시의 해조음을 듣는다.
바다가 허용하지 않으면 결코 바다로 갈 수 없다는데 물때가 되었나보다. 어부들의 발걸음이 바쁘고 시비가 철썩거린다.
세상이 소란스럽지만, 진동 겨울바다에 괭이갈매기로 수를 놓은 이불을 덮어주듯 사랑보다 붉은 노을이 물든다.
고향 같은 포근한 어머니의 미소로 진동바다에 노을이 진다.
바다에 추임새를 넣는 어부사시사의 물결이 저 골목 어귀의 어묵 솥에서 피어오르는 김처럼 훈훈함으로 출렁거린다.
바다와 어머니, 영원한 우리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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