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김삿갓의 생애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 두 대문 문간마다 걸식을 하며∼로 시작되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노래가 있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이며 자는 성심이고 호는 난고이며 순조 7년(1807) 권문세가인 안동 김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시제에 능하고 재치와 유머가 번득이는 언어의 마술사다. 그는 과거보는 시험장에서 과장에 걸린 문제를 보고 단숨에 시를 써내려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작성한 문제 답안이 조상(할아버지 김익순)을 호되게 꾸짖는 것임을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그는 조상을 볼 면목이 없었다. 여러 날을 고민한 그는 천하를 떠돌며 자기 자신을 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조상을 욕보인 자신은 햇빛을 볼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고 삿갓을 쓰기 시작했다. 삿갓을 쓰고 주유천하하는 김병연에겐 이름 대신 김삿갓이란 별명이 붙여졌다.
김삿갓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시가 있고 술이 있었다. 한 잔 술에 시름을 털고 한 잔 술에 시 한 수를 지어주는 그는 재치와 기행의 천재였다.
김삿갓의 이름은 발 없는 말이 돼 조선 천지에 알려졌다. 뼈대 있는 집안의 고을 사또는 김삿갓에게 자신의 아들의 글을 가르쳐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줏대 없고 뻔뻔한 벼슬아치들을 시로써 신랄하게 비판하는 독설가이기도 했다.
또한 고을이면 고을마다 김삿갓을 기다리는 여인들이 있었다. 양가집 규수로부터 이름난 기생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김삿갓은 그 누구도 물리치는 일이 없었다.
김삿갓은 그들의 품에서 한겨울이 지나도록 정담을 나누기도 하면서 해학과 풍자로 기득한 시를 남겼다.
김삿갓은 집을 떠난지 2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집은 더 이상 그의 안식처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연과 풍류가 있었고 다른 무엇도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다시 방랑의 길에 올랐으며 그 후 세상을 떠나기까지 단 한 번도 집을 찾지 않았다.
둘째인 익균이 세 번이나 찾아와 집으로 돌아갈 것을 애원했으나 김삿갓은 아들의 청을 끝내 뿌리쳤다.
그는 57세를 일기로 전라도 동북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외롭고 불우했던 그의 생을 마감했다. 다행히 그의 시신은 아들 익균이 모셔다가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노루목(현재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태백산 기슭에서 장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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