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환갑이 지나도록 단독주택에만 살다가 몇 달 전 현재의 아파트로 이사 온 입주민 A씨는 우연히 옆집에 놀러갔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옆집 거실 천장엔 수도꼭지 같기도 한, 희한하게 생긴 쇠파이프가 삐죽 나와 있었는데, A씨의 집 거실 천장엔 그런게 전혀 없었기 때문. 이웃에게 물어보니 “모든 집에 다 매달려 있는 게 A씨 집에만 없을 리가 있겠느냐”며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라고 했다. 그 물건의 이름이 불이 나면 자동으로 물을 뿜어내 소화시켜주는 ‘스프링클러’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전화를 하고 10분쯤 후 관리사무소장과 기사 한 명이 방문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소장과 기사는 난감한 표정으로 거실 천장을 이리 저리 살펴보더니 곧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소장이 긴 막대로 짚어준 곳엔 작은 구멍이 있었고, 랜턴을 비춰보자 그 안에 옆집과 같은 모양의 스프링클러 헤드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다른 쪽에도 그런 구멍이 더 있었다.
관리사무소장은 “아마도 전에 살던 입주민이 천장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스프링클러가 안으로 묻힌 것 같다”며 “이런 경우 화재 발생 시 초기 소화에 필요한 살수기능이 저하될 수 있으니 반드시 수선해야 한다”고 설명해줬다. 생각해보니 옆집보다 천장이 낮은 것도 인테리어 때문인 모양이었다. 결국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천장공사를 다시 하고 말았다.
다른 아파트의 입주민 B씨는 새로 입주한 집 거실의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똑똑 떨어져 건설사에 하자접수를 하고 새 헤드로 교체했다. 그런데 며칠 후 같은 증상이 다시 일어나 또 한 번 헤드를 교체해야 했다. B씨는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물 먹은 바닥마루까지 모조리 교체하고 그 기간 중 호텔 체류비용까지 청구할 거라고 벼르고 있다.
공동주택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전유부분’과 ‘공용부분’이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내가 누워 있는 방 바닥이 아랫집에겐 천장이므로 함부로 뜯거나 구멍을 내선 안 되고, 벽의 안쪽엔 벽지를 바르든 페인트를 칠하든 내 맘대로 지만 벽 바깥쪽까지 손을 대선 안 된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선 전유부분인지 공용부분인지 헷갈리는 때가 있다. 스프링클러가 대표적이다. 집 안에 설치돼 있으므로 전유부분으로 봐야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간혹 분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공동주택 하자의 조사, 보수비용 산정 및 하자판정기준’ 일부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관련기사 1면>
이번 예고를 보면 하자 여부 판정을 위한 전유부분과 공용부분의 판단기준을 신설, 명확히 구분한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전유부분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는 공용부분으로 본다’고 규정함으로써 입주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핵심 소방설비 중 하나인 스프링클러를 관리사무소에서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명분이 생겼다.
그런데 문제는 입주 당시 처음 설치된 스프링클러가 온전히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집 꾸미길 좋아하는 우리 국민은 남이 살던 집에 그대로 들어가 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새 집조차 모조리 뜯어내고 다시 인테리어 시공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가 스프링클러 헤드를 손상시키거나 없애버리는 일도 있는데 현재의 관리사무소 인력으론 때마다 모든 가구를 일일이 점검한다는 게 쉽지 않다. 소방점검 시에도 사람이 없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내부를 구경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가지도 못하니 난감한 일이다.
이번 예고는 또 가구 계량기를 공용부분으로 규정하고 있다. 많은 아파트들이 계량기 교체비용을 각 가구가 부담토록 해 왔는데 이게 유지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관리비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전유부분과 공용부분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건 좋지만 관리사무소의 손길이 미칠 수 있고, 구조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많은 부분을 공용으로 할 경우 그만큼 관리비가 인상되고, 입주민의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일과 부담은 점점 늘어나는데 살림살이는 점점 쪼그라들기만 하는 관리직원들. 그럼에도 그들을 바라보는 눈길엔 온정은 별로 없고 냉기만 가득하다.
이래저래 관리사무소에 참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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