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김장철이 되면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기억 안에는 작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담겨있다가 절기가 달라지면 어김없이 기억에서 튀어나와 향기를 뿜어낸다. 삶과 행복과의 관계는 세상 나름이 아니라 살기 나름이다. 아무리 삭막해도 온기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사람꽃’을 피워 낼 수 있다. 
매주 운동을 다니면서 들르던 단골 청국장집에 한동안 뜸했다. 봄 여름 가을 내내 남편이 병원에서 보내는 바람에 그리 됐다. 우리가 다시 얼굴을 보이기 시작하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물었다. 단골을 바꾼 것은 아닌지 의심도 해봤는가보다.
우리 소식을 듣는 사람마다 천운을 탔다고들 한다. 비오는 날 남편이 길거리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천사 같은 은인을 만나서 응급조치가 이뤄졌고 늘 바삐 움직이던 내가 황금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곁을 지킬 수 있어서 3번의 위기를 넘기고 기적같이 건강을 되찾았다.   
“사장님 왜 그리 얼굴 뵐 수가 없었어요?”
“그럴 일이 있었어요.”
요즈음에는 어딜 가나 무조건 호칭이 사장님이니 남편도 그곳에서는 사장님이다.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내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안면이 펴지더니 김장을 했느냐고 묻는다.
“5포기 하는 것이니 김장도 아니지요.”
“어머나 귀여우셔라. 5포기가 김장이라고요? 우리는 300포기를 해요.”
“우리 둘이 사는 게 그렇지요.”
이때 남편이 들어오며 주방의 여인들에게로 간다.
“음식은 맛나다고 하면서 한번도 팁을 주어보지 못해서 미안해요. 비싼 음식을 먹지 않으니 그랬던 것 같아요.”
나은 게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며 주인 남자가 받으라고 한다.
어느새 보글보글 끓는 청국장이 나오고 우리는 숟가락질 하기 바쁜데 연신 밑반찬 그릇을 비우기가 무섭게 챙겨준다. 어머니와 며느리, 딸이 그 일에 매달려 있으니 우리는 종종 빵이며 여름에 땀받이 하라고 면 티셔츠를 몇개 건네준 적이 있다. 우리 동네는 옷이 많고 그곳에는 푸성귀가 많으니 그들은 내게 풋고추며 무를 한두 개씩 들려주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음식값을 치르고 나오려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우리가 담글 김장만큼 김치를 퍼내온다. 게다가 대파가 피를 맑게 해준다고 한아름 담아준다. 그 해에는 그 집에서 김장이 끝나고 말았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그 집에 가져다주려고 샴푸, 칫솔, 타올, 핸드크림을 담아뒀다. 내 집에 넉넉한 것을 나누면 도시와 농촌 간에 정이 남게 된다. 
그곳에는 같은 메뉴로 두 음식점이 나란히 붙어서 맛 경쟁을 벌인다. 나는 맛보다 위생 개념을 가진 주인과 깔끔한 집이 좋아 그 집을 드나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신발장 속에서 이쑤시개를 꺼내주거나 말거나 낡은 집으로 더 많이 드나들었다. 장사들도 운이 따라야 돈을 버는 것 같은데 실은 손님에게 시골 할머니처럼 살갑게 다가드는 주인 할머니의 매너가 시린 도시인의 가슴을 덥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 옆집은 성황을 이루고 새 집은 파리를 날리는 형국이었다. 사람이라 심사가 뒤틀릴 수도 있다. 안 사장이 생병이 나서 점점 악화돼 가는 모습이 역력하더니 어느 날부터 딸이 부엌 주인이 됐다. 그 딸이 주방을 맡자 음식맛이 조금 젊어졌다.
나는 기꺼이 마음을 열고 드나들었다. 한 끼 식사로 혀가 굳고 풀릴 일이 아니므로 아파하는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바람 없이 마음을 읽어주고 가진 것을 나누면서 고향인듯 드나들었는데 편리함이 정을 밀어냈다.
시간을 단축하는 새 길이 개통되면서부터 가는 길이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그 단골집으로 가는 발 길은 끊겼으나 ‘잊혀지지 않는 집’이 돼 있다. 김장철이 되면 반드시 그 집이 생각난다. 김치 5포기라도 마음 없이는 덜어낼 수 없는 일이라서 훈훈하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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