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1993년 세계은행 총재였던 폴 울포위츠는 ‘한국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개도국의 희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 이 나라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수많은 신생국 가운데 ‘민주화’와 ‘자유화’를 함께 일군 유일한 나라임을 전 세계인들로부터 인정받았고 이에 고무된 국민들은 선진국 진입의 꿈을 한껏 키워왔다.
그런데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2016년 11월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전국 곳곳에서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원초적 구호가 난무하고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이후 성장을 거듭해 온 주력 산업들은 곳곳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허덕이고 있다. 대다수 선진국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3만달러 수준으로 올라서는데 평균 8년 정도 걸린데 비해 한국은 13년째 2만달러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지금 광화문에서 타오르는 그 많은 촛불의 이면에는 지난 4년간의 온갖 부조리와 갈수록 팍팍해져 파탄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는 민생 그리고 끝없이 추락하는 삶의 질에 대한 불만 등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런 맥락에서 촛불의 의미는 상식과 합리가 존중되는 공정사회를 갈망하는 민초들의 반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가 떠오른다. 1930년대 대공황기-실업자가 폭증하고 도시·농촌 가릴 것 없이 미국 전역이 피폐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살 길을 찾아 서부로 몰려갔다. 이 시절을 극작가 아서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통해 “모든 게 다 고갈돼버린 느낌이었다”고 묘사했다. 사람들의 눈에는 좌절의 빛이 역력했고 분노가 알알이 맺혀 포도송이로 영글어갔다.
요즘의 촛불 시위도 터지기 직전의 포도 알갱이처럼 탱탱하게 영근 분노를 품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로 지목했는데도 오로지 촛불에만 기대고 있는 직업 정치꾼과 악질적인 선전선동분자들 그리고 일부 쓰레기 언론들이 펼쳐대는 광란의 춤사위만 요란할 뿐 진솔한 리더십이나 희망의 로드맵, 새로운 국정 패러다임은 보이지 않은 채 깊은 수렁 속으로만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이웃복도 지지리 없어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상대하기 거북하고 껄끄러운 헤비급 민족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무한한 잠재력의 한(漢)민족, 음흉스러운 슬라브 민족, 약삭빠른 왜 민족이 그 알량한 이웃들이다.
특히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는 2차 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과거사 문제를 완전히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그걸로도 모자라는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해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신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등 거칠 것이 없는 세계적 ‘마초 4강’에 둘러싸인 우리는 지금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으로 갈라진 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으르렁대고 있는 곳이 바로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이 나라 대한민국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안팎 곱사등이 신세로 전락한 채 누란지위, 풍전등촉, 백척간두의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의 선택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야건 탄핵이건 대통령의 거취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헬조선’의 현실에 개탄해 거리로 뛰쳐나온 촛불 민심을 달래 줄 혁명적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의 이 유례없는 국가적 혼란과 혼돈 속에서 이제 믿을 구석이라고는 오로지 ‘집단지성의 힘’ 뿐이다. 그것도 단순한 위기 대응형이나 사태 수습형 집단지성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헌정 질서 구축을 위한 ‘미래지향적 집단지성의 힘’이 절실하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떠나자 신분제도의 최하층인 노비들이 대거 왜군에 가담하면서 조선은 이미 내부적으로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영의정 유성룡은 노비들의 신분 상승이 가능한 면천법(免賤法), 부자 증세법인 작미법(作米法·대동법), 국제 무역을 허용하는 중강개시(中江開市) 등 가히 혁명적인 개혁 입법으로 민심을 수습했다.
따라서 이 난국을 헤쳐 나갈 해법은 임란 때 유성룡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사회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 즉, 모든 권력을 나라의 주인인 민초들에게 돌려주는 일에서 찾아야 한다.
‘이게 나라냐’고 탄식하며 한줄기 바람결에서나 겨우겨우 삶의 동력을 찾고 있는 이 시대, 이 땅의 민초들이 가엾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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