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삶을 힘들게 하는 건 꼭 심한 고난이나 대형 재난사고만이 아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 우리 생활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손가락 끝에 박혀-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작은 나무가시 하나를 빼내는데 살이 다 헤질 정도로 사투를 벌여야 하는 때가 있고, 어금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실오라기 같은 나물 한 올이 양치질로도 빠지지 않아 하루 종일 불편한 때가 있다.
공동주택 관리에도 그렇게 사소해 보이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계절별로도 그런 일들이 생긴다.
요즘처럼 겨울의 초입에 이르면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결로문제로 인해 분란이 벌어진다.
중국에서 난방을 시작하면 엄청난 분진과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에까지 피해를 주는데, 우리 아파트들이 난방을 시작하면 집안에 미세한 물방울들이 맺혀 입주민을 괴롭힌다.
심한 경우 침실 벽과 천장에도 결로가 발생하는데 건물 중간에 위치한 가구들은 이런 일이 별로 없지만, 최상층이나 좌우 측면에 위치한 가구에선 침실결로로 인해 곰팡이가 피어나고 벽지가 들뜨기도 한다. 갓난아기나 어린이가 있으면 더욱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특히 발코니 결로는 매우 많은 집에서 아주 흔하게 발생한다. 중간에 위치한 가구도 예외가 아니다. 한겨울엔 마치 안개비가 내리는 것처럼 맺힌 물방울들이 줄줄 흘러내리기까지 한다. 발코니 공간을 없애고 거실이나 침실을 창끝까지 확장한 집에선 장판과 마룻바닥까지 물기가 스며들어 색이 변하거나 부풀어 오르고 썩기도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교차가 큰 날엔 지하주차장 바닥에도 결로가 생긴다. 심한 날엔 맺힌 물방울들이 차량출입구 근처의 바닥에 흥건하게 고여서 “간밤에 비도 내리지 않았는데…아침부터 물청소를 하느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어떤 입주민들은 “땅바닥에서 물이 올라온다”고도 하지만 에폭시나 우레탄으로 코팅된 방수층이 깨지지 않는 한 주차장 바닥을 뚫고 물이 올라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지역별 연차별 편차도 심해서 일교차가 심한 산간지역이나 습도가 높은 강가와 바닷가에 위치한 신축 아파트들에서 결로현상이 더 많이 발생한다.
간혹 아무 생각 없이 주차장 경사로를 내려오던 차량이 물기에 미끄러져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입주민과 건설사, 관리사무소와 건설사, 입주민과 관리사무소 간에 크고 작은 분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결로가 하자로 인정돼 수리나 피해보상처리를 받기가 꽤 어렵다는 점이다. 건설사가 모든 공정을 설계대로 시공했다고 증빙자료를 제출하면 법원에서도 하자로 인정하지 않는 게 다반사다.
특히 개별적으로 발코니를 확장하거나 외기를 차단하는 섀시를 설치한 경우엔 하자로 인정받는 것이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해결방법이라고 해봐야 집안에선 난방온도를 낮추고 환기를 자주 하라는 것과 지하주차장엔 환기장치를 자주 작동시켜 주라는 지극히 원시적 수단 밖에 없다.
이번에 SH공사가 ‘결로예방 설계 및 제도개선 방안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관련기사 2면>
결로는 한번 생기기 시작하면 없애기가 매우 어렵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사라지기만 기다려야 한다.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설계기술과 시공방법 개선으로 손톱 밑 가시를 뽑는 것처럼 시원한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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