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관리직원 저임금 부채질 정부가 할 짓인가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A씨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3시간. 지난해 주택관리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열 달 동안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 9월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한 곳이 현재의 아파트다.
2012년에 직장을 나온 후 A씨의 생계수단은 대리운전이었다. 그런데 소장이 된 지금도 대리운전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현재 소장 월급으론 고등학생과 중학생 두 자녀의 학비를 대기에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 월급이 얼마나 되는 지 묻자 “200만원에도 한참 못 미쳐…”라고 말꼬리를 흐린다. “당분간은 투잡생활을 벗어날 가망이 없다”는 그는 “4년 동안 밤새 대리운전을 하면서 수도권 지리를 통달한 게 큰 자산”이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가 근무하는 아파트는 영세단지로 일명 ‘초보 소장의 등용문(?)’으로 소문난 곳이다. 취업이 발등의 불인 신규자격자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지만, 급여가 너무 적어 1년 이상 버티는 소장이 드물다. A씨도 틈나는 대로 소장구인 공고를 찾아본다고 했다.

 

선정지침 개정안, 격랑 예고

공동주택 관리현장이 격랑에 휘말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일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이하 선정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하면서 관리현장에서 이에 대한 비합리성과 부당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위탁관리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 시 ‘입찰가액 산출내역서’에 인건비를 포함하고, 계약 체결 시 인건비를 포함하도록 한 부분이다.
관리종사자들은 이 조항이 명문화되면 “가뜩이나 저임금에 시달리는 관리직원들의 월급이 대폭 삭감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뿐만 아니라 업체 간 저가수주 경쟁이 격화돼 “직원 수까지 줄여서 노동강도는 더욱 높아지고, 대형 사고마저 초래할 위험이 매우 크다”며 “대체 이런 독소조항을 도입하려는 저의가 뭐냐!”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현재 시행 중인 선정지침은 주택(위탁)관리업자를 선정할 때 ‘위탁관리수수료’만으로 계약하는 형태와 인건비 등을 포함하는 ‘총액관리비’(일명 도급제)로 계약하는 형태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론 위탁관리수수료만 정하는 계약방식이 90% 이상으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도급제로 갈 경우 입주민에게도 피해를 입힐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불법도급’ 양산 위험

도급제는 모든 작업과 관리를 하청업체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의 채용과 인사관리 그리고 작업지휘까지 모두 하청업체가 직접 도맡아 해야 한다.
공동주택 관리에 도급제를 적용하려면 위탁관리업체가 모든 사항을 직접 행사해야만 한다. 소장이나 직원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지시를 받고 일을 하면 ‘불법도급’이 된다.
현재의 관리구조상 도급제를 도입하면 곧바로 불법행위만 양산될 거란 얘기다.
현장 종사자들은 “입주민의 과도한 간섭도 문제지만 위탁관리업체에 예속되는 건 더욱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아파트와 입주민을 위해 수행돼야 할 관리업무가 위탁사를 위한 업무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산출내역서에 인건비를 넣은 이유로 ‘낙찰자 선정 후 인건비 등을 높게 책정해 관리비가 상승하는 것을 방지하는 취지’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파트는 매해 연말이면 다음 연도 예산을 확정한다. 관리사무소장의 급여부터 경비원의 휴게시간을 제외한 임금까지, 모든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급해야 할 인건비를 명확하게 책정해 둔다.
중간에 업체가 바뀐다고 해서 예산을 변경시킬 순 없다. 소장이 새롭게 배치되더라도 본인이 얼마의 월급을 받게 될 지 사전에 다 알고 간다.
그러므로 위탁관리수수료 방식으로 낙찰 후 인건비를 상승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관리현장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위탁업체에도 큰 부담

그러나 입찰가액에 인건비를 집어넣게 되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관리업무에 소요되는 제반비용이 뻔한 상황에서 타업체와의 비교우위에 서려면 인건비를 낮게 책정하는 수밖에 없다. 책정된 예산보다 인건비를 올릴 순 없어도 내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애꿎은 직원들만 피해를 입을 공산이 크다. 또 회사에 유리하도록 수수료는 높게 책정하고, 직원 임금을 낮추는 편법이 자행될 소지도 다분하다.
더 확실한 낙찰방법은 직원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월급 260만원을 받는 기사 한 명만 내보내도 입찰가액을 3,000만원 넘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도 대부분의 아파트 근무 인력이 최소한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기술인력은 물론이고, 최저임금 100%를 지급하게 되면서 상당수의 경비원들이 쫓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입찰만 따내고 보자는 위탁사들이 직원 감축에 나설 경우 노동강도 증가에 따른 산업재해와 입주민 안전사고 증가는 필연적이다.
도급제가 소형 위탁사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대형업체에게 유리하도록 운동장이 확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위탁관리업체가 수십 개 단지로부터 수백 억원대의 관리비를 걷어간 후 부도라도 내면 어쩔 셈이냐”, “미꾸라지에게 고래를 맡길 순 없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새나오고 있다.
한 소형 위탁사 대표는 “도급제가 도입되면 몇몇 대형업체들이 전국의 모든 아파트 관리를 독식하게 될 것”이라며 “중소업체를 더욱 힘들게 하는 대기업 위주의 편향된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자치관리 전환 바람 불 수도

문제는 또 있다. 2018년부터 85㎡ 이상의 공동주택까지 부가가치세 부과가 확대 시행된다.
입주민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세금이 없는)자치관리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칠 게 자명하다.

 

공동주택 관리직원들은 오래 전부터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려 왔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런 추세가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 대부분은 중장년층으로 자식들의 학비와 결혼을 위해 생활비가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다.
현장에서 만난 한 관리사무소장은 “공동주택 관리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는 국토부까지 나서서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할 줄 몰랐다”며 “관리업무의 질적 향상은 도외시 한 채 오로지 저임금, 저비용으로만 관리를 바라보는 시각에 크게 실망했다”고 토로한다.
근래 들어 대한민국의 뜨거운 감자가 된 공동주택 관리.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크지만 실상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리가 크게 부풀려진데 반해 관리종사자들이 처한 현실은 관심권 밖이다.
그들의 표정이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이경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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