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세월 흘러 파란만장한 바다와 작별을 하는 ‘바다 은퇴식’이란 시는 그의 샹그릴라다. 
사람이 만든 말이요 사람이 지어낸 글이지만, 오선지에 담을 수 없는 향기가 되고, 캔버스에 그릴 수 없는 마음이 된 ‘바다 은퇴식’이란 그의 시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 부끄러움이 없다는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이요 부부작어인(俯不作於人)이다.

지는 해가 기관실을 더듬는다.
수십 년 치부책에 마지막 물길을 적는 해
미처 못다한 말 푸념처럼 던져보는 뱃길
갑판 위 어망과 도구
몽키 스패너 기름 냄새까지도 작별인사를 건넨다.

자식만이 피붙이는 아니었다.
나를 우걱우걱 갉아먹던
고래심줄 40년, 나는 바다를 끼고 살았다.
파도와 물새 울음이
궂은 날 수시로 내 몸에서 새어 나왔다.

수없이 써 펼쳤던 뱃길
바다는 따라오며 다 지워버렸다.
한 장 백지만 펼쳐놓고 읽어보라는 결벽증
이른 봄날 물안개로
온 몸을 비벼대던 저 바다

장문의 편지를 다 받아 읽은 바다가 보낸
광어 우럭 도다리 노래미,
그 답장을 찾아 읽으며
여기까지 왔나보다.

갈매기가 운다.
지는 해를 따라가던 바다도 눈시울을 붉힌다.

어머니의 바다 은퇴식에 무슨 꽃다발이 있으며 훈장이 있었겠는가.
묵직한 퇴직금도 없이 그저 이 한 편의 시로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고 회고했으리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이는 고뇌의 삶은 차라리 묻어두고 싶은 은밀한 은유인 것을.
너그러운 바다, 성난 바다, 파도가 아닌 바람 몇 자락에도 아랫도리는 늘 젖어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어머니.
스크루에 감겨 생사를 헤매고, 닻줄을 당기다 물 속으로 곤두박질쳐 사경을 헤매던 삶의 흉터도 바다가 건넨 추억이 되었단다.
미더덕 양식장에 부표가 태풍을 만나면 시간이 생명인 환자처럼 격랑 속에 풍비박산이 되고, 미란다 원칙도 진통제 처방도 통하지 않는 표류는 이카루스의 날개이어라.
저마다의 웃돈과 뒷돈이 알리바이를 만들지만, 너울거리는 물결이 화를 내면 절대로 통하지도 않고 용납이 안 된다고 흰 거품을 물고 으르렁 대는 바다.  
갈매기가 짝을 지어 나는 로맨스이거나 바다에 잠긴 보름달을 건지는 낭만은 바다가 주는 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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