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요즘 많은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고 장탄식을 쏟아낸다.
일반인은 평생토록 구경 한 번 못해 볼 구중궁궐 심처에서 벌어지는 온갖 분탕질이 국민에게 분노와 허탈을 넘어 집단 우울증세까지 앓게 만들었다.
“돈 많은 것도 실력”이라고 망발한 어떤 젊은이는 몇 십 억원짜리 말과 독일의 개인전용 승마장까지 사들이려 하고, 말 타는 틈틈이 연애도 해서 아이 낳고 잘 사는데,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은 돈이 없어서 사랑도 못한다.
대한민국은 돈이 없으면 결혼도 못하는 나라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저출산과 청년일자리’ 보고서에 따르면 20~30대 남성노동자 중 임금하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의 결혼 비율이 6.9%에 불과하다. 반면에 상위 10%의 결혼비율은 82.5%로 12배의 격차를 보였다. 잘 버는 남자 10명 중 8명은 결혼하지만, 못 버는 남자는 10명 중 1명도 제 짝을 찾지 못한단 얘기다.
예전엔 사글세 단칸방에서 시작해도 차근차근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가난은 장애물이 될 수 없었으나, 지금은 단칸방에서 시작하면 평생 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절망감이 가난한 젊은이들의 사랑과 연애,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고 있다.
비정규직의 결혼비율은 정규직의 반토막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기업 편향정책을 퍼부으며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해 내고 있다.
일본 역시 신빈곤층으로 떠오른 비정규직 문제가 국가적 난제가 됐지만 대처방식은 우리와 판이하다. 대표적 우파인 아베 총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강조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알바 시급도 1만원을 돌파했다.
아베가 특별히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극심한 양극화를 방치해두면 아베노믹스가 성공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같은 보수우익이라도 한 쪽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한 쪽은 드라마와 주사기에 꽂혀 있다.
대한민국 공동주택 관리종사자들은 99.9% 비정규직이다.
1년 단위로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는 그들은 계약만료 전이라도 위탁관리업체가 바뀌면 그 날로 쫓겨나는 신세다. 주민대표의 눈 밖에 나도 그렇다. 임금은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 경력과 실력에 따른 인센티브는 꿈도 못 꾼다.
이렇게 딱한 사람들의 가녀린 목에 정부가 비수를 들이댔다.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 개정안이 관리직원들을 더욱 궁지로 몰고 있다. <관련기사 1면>
국토교통부는 지난 2일 선정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하면서 위탁관리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 시 ‘입찰가액 산출내역서’에 인건비를 포함시키고, 계약 체결 시에도 인건비 세부내역을 포함하도록 했다.
현장 종사자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임금과 고용불안이 악화될 게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가 낙찰을 받기 위해선 가격경쟁력이 최우선 확보돼야 한다. 여기에 인건비가 포함되면 곧바로 직원 급여 삭감으로 이어진다. 전 직원의 임금을 몇 십 만원씩 낮춰 써 내면, 1년에 몇 천 만원에서 몇 억 원의 금액을 낮출 수 있다. 도박판이 따로 없다. 여기에 직원 숫자까지 줄이면 당첨(?)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아파트 입장에서도 금액이 낮은 업체를 선호하는 게 당연지사다.
그러나 그 후에 벌어질 일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생활비가 모자란 직원들은 퇴근 후 알바를 뛰어야 할 판이고, 함께 일하던 동료가 잘렸으니 업무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검은 돈의 유혹에도 약해진다.
결국 이는 산업재해와 입주민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도급제는 원청의 지시와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현행 노동법상 아파트에 도급제가 도입되면 입주민은 물론이고 주민대표라도 업무를 지시할 경우 불법행위가 된다. 애초부터 아파트에 도급제를 실시한다는 건 성립불가능한 얘기다. 부가세 때문에 자치관리로 전환하자는 파도가 일면 걷잡을 수 없는 쓰나미가 돼서 위탁관리업체들을 집어삼킬 수도 있다.
관리종사자도 사람이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배는 침몰해 가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되풀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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