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가리지 않고 다 품는 것이 있으니 바다와 어머니다.
시원(始原)을 가리거나 미추(美醜)를 가리지 않는다.
선악(善惡)을 가리거나 호오(好惡)를 가리지 않는다.
색깔을 구별하고 향기를 분별하지 않는다.
바다가 크고 작은 강을 가려서 받아들이던가.
어머니가 잘나고 못난 자식을 구별해서 가슴에 품던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주야를 가리지 않는 바다와 어머니.
깊어가는 가을,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기온은 내려가고 온기가 그리워지는 연말은 다가오는데,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해남의 절임배추가 김장을 알리고,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곧 등장할 텐데 세상이 너무 요란스럽다. 숱한 내우외환을 바라보며 한 곳에서 꿈쩍도 안하고 서 있는 저 천년목(千年木)은 인연을 잘 만나서일까.
부처 옆에 있다고 다 부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문고리를 잡았다고 다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 것을.
세상의 인연은, 잘못 계산으로 인해 상처가 되기도 하고 빠른 속셈으로 인해 영광이 되기도 한다지만, 학연도 지연도 빈부도 지위도 필요 없는 저 바다와 어머니. 넓이도 깊이도 재려고 한다면 못 잴 리도 없지만, 바다와 어머니는 자로 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오늘 진동 바다를 한 바퀴 돌아 한평생 바다와 더불어 산, 한 어머니의 시비(詩碑) 앞에 서 있다. 꽃다운 스물넷에 시집 와 첫날 밤조차 사는 게 먼저라고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파도와 엎치락 뒤치락 뜬눈으로 바다에서 보내고, 아무리 뜨거운 사랑도 4년이 한계라는데 몸이 약한 남편을 대신해 ‘청일호’라는 선장이 되어 40년이 넘게 벼랑 끝에 서서 바다와 울다가 웃다가 한 어머니의 사랑바다.
예고도 없는 비바람이 몰아칠 때 어찌 바다가 두렵지 않았겠는가.
비요크는 인생은 두려움을 엮어서 만든 목걸이라고 했다.
생존이 우선이던 그 옛날, 고향 진동만에 주린 배를 채워주고 세상에서 가장 달다는 그 입맛을 잊을 수 없다는 어머니의 질피뿌리(바다풀)는 저만치서 흔들거리는데. 고드름이 아니라 바늘이 되어 찌른다는 한겨울 바다에 내리는 겨울비는, 새파랗게 돋아나는 희망의 솔루션이요 행복의 마중물이었다는 어머니.
절망의 해독제는 행동이라는 존 바에즈의 말도 모르고, 역경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지는 않지만 지혜롭게 한다고 한 풀러의 말도 모르지만,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고 별들을 보면 어린왕자가 생각난다는 어머니의 바다와 하늘.
모든 색깔은 빛의 고통이라고 한 괴테의 가을은 낙엽이 되어 방랑자가 되고, 어느 모퉁이의 그리움은 비하인드 이야기가 되어 우듬지가 되는 늦가을.
생선에 칼집을 내는 것도 생선 맛을 위해서요, 인생에 상처를 내는 것도 인생 맛을 위해서일까.
아리랑 고개를 넘으면 쓰리랑 고개요, 아리랑 파도를 넘으면 쓰리랑 파도다. 고개 고개를 넘고 파도 파도를 넘으면 꽃길이 되고 비단길이 된다는 어머니의 바다는 커다란 정화수 한 사발이다.
마음을 담고, 기도를 담고, 희망을 담는 어머니의 정화수 바다. 그래서 바다와 어머니의 가슴은 아무리 속을 끓여도 밀어내는 갑질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상처를 안은 진주조개가 물 밑에 있어도 반짝이는 비밀처럼, 40년을 누빈 그 비밀스런 바다와 작별을 하려고 한다.
삶을 이끄는 비밀의 단어도 많겠지만, 견디고 버티는 것이라는 소소한 일상이 인생이 된다. 석가도 가장 위대한 기도는 인내라 했고, 오늘도 그 수많은 역경 속에서 울 수조차 없는 이 땅의 어머니가 모두 저 큰 바다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