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입동을 지나 저무는 시간 위로 낙엽이 흩날린다. 만산홍엽으로 절정을 구가한 뒤 온갖 집착 다 내려놓고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훌훌 털어버릴 줄 아는 벌거벗은 나무와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에게서 절제와 순종 그리고 겸양의 미덕을 배운다. 짓밟히면서도 소리치지 않고 태워지면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저 순수한 열정을 뉘라서 따를 수 있으랴. 제 역할과 사명을 다 마치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낙엽을 보고 있노라면 사념(思念), 사유(思惟)는 깊어만 간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는 근원을 생각하고 낙엽귀근(落葉歸根)에서 생명복귀(生命復歸)의 법칙과 철리(哲理)를 깨우쳐야 하는 때다.
다가올 봄의 영광을 꿈꾸며 뿌리로 돌아가 생명순환의 밑거름이 돼 주는 낙엽이 더 없이 거룩하게 여겨지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의 이치와는 달리 우리네 사람 사는 세상과 날씨는 처연하다 못해 음산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 연설문 등 청와대 보고서를 빨간 펜으로 수정했다는 ‘강남 아줌마’가 벌인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공직사회는 ‘순실 포비아’에 시달리고 국민들은 실망과 분노를 넘어 집단적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그토록 원칙을 강조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최순실 만은 그 원칙의 울타리 밖에 세워뒀을까. 그리고 그녀는 수백억의 재산가라면서 왜 칼 안든 강도짓까지도 서슴지 않은 것일까. ‘그 어미에 그 딸’이라고 승마선수라는 스무살짜리 여자애는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며 개·돼지로 매도돼 가뜩이나 서러운 국민들의 가슴에 못질을 해댄다.
하지만 우리가 돌을 던져야 할 대상이 어디 저들뿐이랴.
언제부턴가 이 나라의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에게는 결격사유가 곧 자격요건인 것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면제 또는 기피, 탈세, 논문 표절, 게다가 거짓말과 우격다짐, 임명권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 특권 누리기와 갑질, 그리고 양념처럼 곁들여진 ‘국민 깔보기’와 ‘죄짓고 휠체어 타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니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겠는가.
대기업이 불공정 거래로 이익을 취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일쑤이고 법원이나 국회에서 위증을 해도 비난 한 마디면 그걸로 끝이다. 정치인이 거짓말을 해도 다음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13일 통계청이 국가지표체계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 종교단체, 교육계, 노동조합, 언론사, TV방송국, 의료계, 중앙정부, 금융기관, 국회, 청와대, 군대, 학계, 시민단체, 대기업, 지방자치정부 등 16개 공공 및 민간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 국민 3명 중 1명이 사회정의 수준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으며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26.4%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스톰’에 따른 ‘공포지수’까지 급등하고 있는 대한민국호는 지금 시계 제로의 내우외환 상태에서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야권은 사실상 대통령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나서는 판국에 집권 여당 내부에서는 서로 총질이나 해대고 있다. 이 와중에 잠재적 대선주자라는 사람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관리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것이냐가 아니라 국민의 감정을 부추겨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일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은 ‘최순실 아바타’니 ‘꼭두박씨’니 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고 외국 특히 촛불시위는커녕 1인 시위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숨 막히는 나라 중국에게까지도 조롱당하는 실정이다. 이 불가항력적 시대불화에 위로받기는커녕 누구 말마따나 정의는 보증되지 않고 시대의 왜곡 속에서 꿈은 변형되고 고뇌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야 하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울부짖는다.
하여 비교적 자기 비평에 엄했던 미국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의 시 구절로 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볼까 한다.
“저 이상한 꽃. 태양./ 네가 말한 그대로이지./ 네 맘대로 해.// 세상은 추하고./ 사람들은 슬프다.// 저 밀림에 쌓인 깃털들./ 저 동물의 눈./ 네가 말한 그대로이지.// 저 사나운 불꽃./ 그 자손들./ 네 맘대로 해.// 세상은 추하고./ 사람들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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