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왜곡.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한다’는 뜻이다.
역사적 사실, 사회현상, 언론보도 등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얼마 전엔 영화 ‘덕혜옹주’와 ‘인천상륙작전’이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역시 사실과 진실에 대한 왜곡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주 전 세계가 경악했다. 대다수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다.
사실 ‘대다수의 예상을 깼다’는 말엔 큰 결함이 있다. 미국민 스스로 선택한 대통령이 트럼프인데 ‘대다수’가 낙선을 예상했단 말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각종 여론조사와 통계자료들이 민심을 얼마나 왜곡시킬 수 있는지 잘 나타난다.
주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비주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철저하게 숨기고 있는지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선거였다.
미국의 희한한 선거제도 역시 또 한 번 도마에 올랐다.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다수득표자가 아닌 선거인단을 더 많이 확보한 후보가 승리하는 독특한 제도 때문이다.
우리나라였다면 이번 대통령은 트럼프가 아닌 힐러리 클린턴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2000년 대선승자 역시 (조지부시가 아닌) 엘고어였을 것이다.
연방국가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는 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상한 제도 때문에 민심이 왜곡될 수 있는 사례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인간이 얼마나 뻔뻔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독도를 강탈하려는 끊임없는 시도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고개를 빳빳이 쳐드는 모습에 다다르면 ‘지들이 저지른 일을 정말로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대표적 전범국가인 독일은 이미 1970년 당시 서독총리였던 빌리브란트가 폴란드를 방문해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써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마음에서 우러난 사죄는 유럽이 하나로 대통합하는 기폭제가 됐고, 독일이 유럽의 중심국가로 인정받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빌리브란트 총리는 이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독일은 지금도 틈만 나면 전쟁희생자에 대한 사과를 빠트리지 않으며, 천문학적 피해보상금을 내놓고 있다. 독일 덕분에 일본의 역사왜곡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이번 미국대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인종갈등 문제다. ‘흑·백 또는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갈등이 국가적 문제를 풀어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는 점을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한국의 지역감정만 망국적인 줄 알았는데, 미국의 인종갈등이 더 큰 망국적 현상이 됐다. 그나마 우리 사회에선 느리긴 해도 지역감정이 조금씩 엷어져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고무적이다.
공동주택 관리에 있어서도 왜곡현상이 적지 있다. 대표적인 게 언론에 의한 비리 과장보도 문제다. 기사를 쓰기 전 좀 더 깊은 구조적 문제를 봐야 한다.
또한 몇 명의 목소리가 마치 전체 입주민의 뜻인 것처럼 과대포장되는 것도 심각한 왜곡이다. 이런 민의왜곡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공동주택에서 왜곡을 불식시키는 길은 단 하나. 입주민의 관심과 참여뿐이다.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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