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아파트신문 지령 1000호를 맞아


 

사  설

한국아파트신문이 1000번째 윤전기를 돌렸다. 잉크 냄새가 종이를 타고 흐르며 새 소식의 전령으로 다시 태어나길 천 번 반복하는 동안 21년이 흘렀다.
긴 세월을 거치며 공동주택 관리 분야의 명실상부한 1등 신문으로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의 영광과 고난을 함께 해 준 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본지는 앞으로도 ‘입주민을 위해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대표의 명예로운 활동을 지원하며, 관리종사자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땀 흘린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쉼 없이 달릴 것이다.
야속하게도 현실은 권력과 자본의 편인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역사는 늘 약자와 빈자의 편이었다.
왕과 귀족의 폭정에 항거해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일어난 프랑스혁명은 신민(臣民)을 시민(市民)으로 승격시켰고, 미국 남북전쟁은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으로 이어져, 아프리카에서 사냥당해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아메리카 대륙까지 끌려온 사람들이 (불완전하지만)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
1886년 5월 1일 시카고에서 일어난 메이데이 투쟁은 1919년 베르사유강화조약과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8시간 노동제의 원칙을 채택하면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아시는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여성 참정권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겨우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는 명언을 남긴 프랑스 ‘혁명의 여전사’ 메리쿠르가 1797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이후, 100년도 훨씬 넘은 1900년대 초중반에 들어와서야 서구의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피와 투쟁의 역사였고, 약자를 위한 역사임은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 가사에도 생생하게 살아 흐르고 있다. 그 역사와 전통은 앞으로도 도도히 계승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건 동학혁명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 듯 했지만, 손병희의 천도교로 이어져 일본제국주의에 맞선 독립운동으로 승화됐다.
현대에 들어서도 독재의 폭압에 맞선 4·19혁명-부마항쟁-광주민주화운동은 1987년 6월항쟁으로 꽃을 피우며 참된 ‘공화국’의 기틀을 마련해줬다.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은 군화발 아래 짓눌려 있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겨우 그 이름값을 할 수 있었다.
근현대사는 민주주의의 역사, 약자가 일어서는 역사, 조금씩 전진하는 역사였다. 그게 정의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이나, 무소유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닌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진리의 가르침이다.
빈자였던 사람이 부자가 되도 썩는 건 매 한가지다. 그래서 역사와 삶의 본질을 꿰뚫은 위대한 선현들은 남을 누르고 위에 올라서는 게 아닌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를 설파해 왔다.
국가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공동주택 역시 그렇다.
어떤 입주민이 다른 입주민의 사리판단을 어지럽혀 사사로이 이익을 취하고, 특정 인물이 공공질서를 무시한 채 이기적 행위를 일삼는 건 공동체 생활에서 용납될 수 없다.
주민대표의 완장을 차고 다른 주민들 위에 군림하며 관리직원을 종처럼 부려서도 안 되고, 관리사무소장의 직분을 망각한 채 개인의 영달만 추구하는 사람은 주택관리사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과 다름없다.
경비원은 늘 폭력과 막말의 대상이 되고, 미화원은 늘 경멸과 냉대의 대상이 되며, 관리사무소장은 늘 불신과 불만해소의 대상이 되는 단지는 행복한 공동주택이 될 수 없다.
약자가 전진하는 역사가 좋은 세상이 돼 왔던 건 그게 정의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공동주택에 갑을관계가 사라지지 않으면 사회와 국가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국제관계에 있어서도 위압적이거나 비굴한 형태로 발현될 수밖에 없다. 상대를 존중해야 내가 존경받는다.
약자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약자가 전진하는 것이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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