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서울대학교 교수가 구속됐다.
대한민국 최고 학문의 전당에서 일생동안 이룩해 놓은 업적과 학문적 성과들, 그리고 명예와 인간성까지 모조리 팔아 버렸다. 그리고 감옥에 갔다.
일반인의 상식으론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단돈 1,200만원에.
해당 분야의 1인자로 꼽혀 왔던 그는 한 기업체로부터 연구용역을 의뢰받고 곧바로 회사제품의 인체유해성 유무를 밝히기 위한 실험에 돌입했다.
생식실험을 위해 임신한 쥐 15마리에게 실험한 결과 13마리의 새끼가 죽었다. 90%에 가까운 치사율이다.
업체는 보고서 내용변경을 요구했고, 그는 유해성이 불분명하다는 보고서를 써 줬다.
실험 전 이미 수백의 생명이 죽었고, 수천 명의 사람이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끔찍한 참극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태연히 보고서를 조작했다. 누구나 선망하고 신뢰하는 서울대 교수는 그렇게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산모와 아기들이 폐질환을 앓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급증했다. 폐 섬유화로 숨을 쉬지 못해 죽어가는 환자가 늘어났지만, 이유는 ‘원인미상’이었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이 괴상한 폐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지목하면서 진상규명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기업의 책임소재를 따지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기업이 독성학의 권위자로 유명한 서울대 교수에게 실험을 의뢰했다. 이유도 모른 채 숨이 막혀 죽어간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줬어야 할 최고의 학자는 돈 몇 푼에 ‘악마의 보고서’를 써주고 말았다. 업체의 뒤엔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변호사들도 포진해 있었다.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악마의 편에 서거나 스스로 악마가 되는 걸 찾아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2009년 어느 여름날. 미국 911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렉서스를 타고 있는데 가속페달이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시속 120마일(193㎞)로 달리고 있다…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교차로가 가까워지고 있다”며 비상사태를 알린 신고자는 “잡아, 잡아, 제발, 제발”이란 비명을 끝으로 사고를 당했다. 차에 타고 있던 4명이 모두 죽었다. 녹음파일이 방송을 타면서 전 미국이 경악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사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자동차들을 제치고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었던 도요타자동차는 기술자들을 내세워 차량결함이 아님을 주장했지만, 나중에 치명적 결함이 밝혀지면서 대규모 리콜사태와 점유율 하락 등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최고 신뢰를 자랑하던 독일차, 폭스바겐도 배출가스를 조작하고 뻔뻔스럽게 조작된 보고서를 제출했다.
요즘 대한민국엔 아파트 관리 때리기가 한창이다.
사소한 실수를 대단한 비리로 호도하고, 하나의 진짜 비리를 수백개의 작은 결함과 묶어 어마어마한 부정부패로 과대포장하는 조사결과들이 때마다 양산되고 있다. 언론도 정부도 지자체도 회계사들도 자신의 업적을 그런 식으로 자랑한다. 모든 게 입주민을 위한 일이라고 한다.
친구의 돈을 빼앗는 아이에겐 벌을 줘야 하지만,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겐 매가 아니라 기초부터 가르치는 스승이 필요하다. 몇몇 단지의 문제를 가지고 모든 아파트에 비리가 만연해 있다고 선전하는 건 관리를 바로 세우는 게 아니라 진흙탕에 거꾸로 쳐박는 격이다. 분란과 불신만 조장해 서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그들은 너무나 쉽게, 매우 당당하게 개구리가 사는 호수에 돌을 던진다.
서울대 교수가 정확한 보고서를 제출하기만 했어도 좀 더 일찍 사태가 정리되고 한 사람의 희생자라도 덜 나올 수 있었다. 최근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2만명’이란 충격적 연구결과도 나왔다. 그는 지금 감옥에서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최고의 학자와 최고의 변호사들이 돈 때문에 악마의 편이 됐다.
힘 없고, 돈 없는 국민들은 과연 누굴 믿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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