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천혜의 신비로운 자태를 고이 간직하고 태백준령 산간계곡의 바람과 구름이 만들어진 참이슬이 모여서 한반도의 젖줄이 돼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동강이 있는 곳, 옛 조상들의 삶의 숨소리가 곳곳에 스며 있는 영월은 조선시대 비운의 임금 단종의 애달픈 사연이 곳곳에 남아 있고 고뇌와 번민으로 죽장망혜(竹杖芒鞋)에 모든 시름을 짊어지고 살아간 풍류객이자 천재시인인 난고 김병연 선생의 삶의 체취가 배어 있는 충절과 문향의 고장이다.

◈청령포
청령포는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 67-1에 소재해 있으며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머무르던 곳으로 아름다운 송림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서쪽은 육육봉이 우뚝 솟아 있으며 삼면이 깊은 강물에 둘러싸여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청령포 내에는 단종어소 입구의 소나무가 특이하다. 담을 넘어 마당 한가운데까지 가지를 뻗었다. 어린 임금 앞에 부복하는 듯한 모습이다. 솔숲엔 국내 소나무 중 가장 키가 크다는 관음송(30m)이 서 있다. 단종의 유배생활을 지켜보고(觀) 단종의 절규를 들었다(音)는 수령 600여 년의 노송이다. 솔숲 뒤편은 단종이 아내를 그리며 쌓았다는 망향탑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 등 단종의 흔적을 알리는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수려한 절경으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2008년 명승 제50호로 지정됐다.

◈자규루 및 관풍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984-3에 위치해 있으며 자규루 및 관풍헌은 15세에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의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의 슬픈 역사가 있는 곳으로 1971년 강원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됐다.
자규루는 옛 객사 근처의 건물로 관풍헌에서 동쪽으로 약 7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영월군수 신숙근이 세종 10년(1428)에 창건해 매죽루라 했으나 후에 단종이 거처하면서 누각에 올라 자신의 애달픈 신세를‘자규사’ 및 ‘자규시’로 읊은 것이 계기가 돼 이름을 자규루로 바꿨다. 이후 이 누각은 선조 38년(1605)의 대홍수로 인해 민가가 들어설 정도로 폐허가 됐는데 강원도 관찰사 윤사극(1728~1809)이 정조 15년(1791)에 영월을 순찰할 때 옛 터를 찾아 중건하고 단종의 시를 봉안했다. 여기서 우리는 실로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문학적 소질이 빼어났던 단종 임금의 시를 감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두견새 1

원한의 새 되어/ 궁궐 떠난 후/ 몸은 푸른 산의/ 외딴 그림자.// 잠들려도 밤마다/ 잠은 안 오고/ 해마다 한은 도로/ 그지없어라// 소리 멎은 새벽 산에/ 잔월은 흰데/ 피로 흐르는 봄 계곡의 붉은 낙화여!// 하늘도 귀가 먹은/ 슬픈 하소연/ 어찌타. 시름의 귀는/ 홀로 밝은고!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 산중으로 쫓겨나 유폐된 어린 임금, 단종의 한 맺힌 심곡(心曲)이다. 이 얼마나 간장을 저미는 정경인가? 깊은 밤 두견새 우는 소리를 들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으리라. 구천에 사무치라 되뇌는 슬픈 음색의 청 높은 속 목청을. 또한 적막한 공산에 밤새도록 울어도 응답 없는, 철저한 고독의 단조로운 외딴 가락을. 그러나 이 시에는 아무데서도 눈물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것, 초기에 이미 탕진해버린 깡마르고도 싸느란 슬픔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 작자의 이렇듯 처절한 정곡의 토로를 한갓 감상물로 치부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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