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공동주택 관리직원들은 가끔 당연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또는 본연의 임무와 다른 일로도 곤욕을 치를 때가 있다.
경비원이 제 자리에서 정상적인 근무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담 넘어 들어온 외부 아이들을 단속하지 못한다고 욕을 먹거나, 미화원이 조금 전 걸레질을 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승강기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쓰레기 국물을 청소하지 않았다고 험한 말을 듣는다.
기전기사는 입주민 가정의 막힌 변기를 뚫어주지 않는다고 미움을 받고, 경리직원은 1가구 2대 이상의 차량에 주차비를 부과해 항의를 받는다.
모두 정상적인 일을 하다가 욕을 먹거나, 규정에 없는 민원에 응하지 않았다고 막말을 듣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모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들 중의 일부분이다. 법과 규정과 관리규약을 보여주며 상세히 설명하면 곧바로 수긍하고, “착각해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며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우기며 직원의 항복을 받아내고 말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다.
관리사무소장 역시 마찬가지다.
소장이 해야 할 일은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는 것 같지만, 따지고 들어가 보면 소장이 해결하고 감당해야만 하는 일이 수백 가지가 넘는다.
아랫집에서 담배연기가 올라와도 소장에게 따지고, 태풍에 나무가 쓰러져도 소장의 관리부실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건 소장의 권한이나 능력 밖의 문제지만 그래도 소장은 묵묵히 그런 부담들을 감내해야 한다.
관리비 체납가구에 납부독촉을 할 때도 그렇다. 돈이 있으면서 관리비를 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직장에서 나오거나, 사업을 실패하거나, 갑작스런 사고 또는 병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연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동정심이나 연민에 빠져 자칫 방심했다간 큰 불상사를 당할 수가 있다.
체납관리비 소멸시효인 3년이 지나 책임을 지게 된 주택관리업자가 생겼다.(관련기사 1면)
관리비는 ‘1년 이내의 기간으로 정한 금전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채권’으로 민법 제163조 제1호에 의해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딱한 사정에 처한 가구라 하더라도 3년이 흐르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해당 단지의 소장은 관리비 미납가구의 체납 수도요금을 충당금으로 대신 납부했으면서도 “지급명령 신청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증명을 보내기만 했을 뿐, 실제론 아무런 법적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입주자대표회의에게도 소멸시효 3년이 임박하도록 시효중단에 필요한 법률적 조치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거나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법원은 관리주체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을 내렸다. 주택관리업자는 항소를 제기했다고 한다.
채권추심업자도 아닌 관리사무소장이 돈이 없어 관리비를 내지 못하는 가구를 상대로 돈을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다만 장기체납가구에 미리 소송을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아두기만 했어도 이렇게 불미스러운 소송에 휘말리고, 손해까지 배상해야 하는 수모는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모든 관리사무소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중요한 타산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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