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명탐정 코난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처럼 여름 햇살이 아직은 구석구석 내려오지만 역사가 잊어버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그리움처럼, 고국의 가을바람이 어디쯤에서 출발했으리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가 없다는, 저게 저 혼자 둥굴어질 리가 없다는 장석주의 대추가, 서툴게 연지 바른 김양의 볼처럼 군데군데 벌겋다.
백두대간 자락의 장수에는 오미자가 진도홍주보다 빨갛고, 예천의 참깨는 이미 다 털어 옛날이야기. 모질게 버티고 견딘 여름이 떠나려 한다. 올 여름을 향해서는 앙코르를 외칠 수가 없다. 앙코르란 본인에게는 무한한 영광이요, 관객에게는 최고의 서비스가 돼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은 매미가 요란하게 울지만 김장을 알리는 태양초가 시장바닥에 나오고, 아침, 저녁으로 창 밖에 귀뚜라미도 시끄럽게 운다.
여름 밤하늘을 수놓았던 ‘페르세우스’가 유성우(流星雨)라는 이름으로 찰나의 아름다움으로 쏟아지고는 떠나려 하고 여름 밤의 별자리인 백조자리, 독수리자리, 거문고자리가 물러나려고 한다.
가을밤의 별자리 페가수스, 안드로메다, 페르세우스가 사랑의 새 이부자리를 깔려 한다. 이제 지난여름이 너무 무더웠다 해도 미워하지 말자.
올 같이 무더운 여름에 전화 한통 없다고 슬퍼하던 85세의 할머니 눈가에도 생기가 돈다. 38세의 생애를 살다간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손종일의 ‘그리우면 그리워하라’다.

떠난 사람의 시간은 떠날 때 이미 멈추었다.
천년만년이 지나도 그리워하는 일은 남은 사람의 몫
사랑하지 않았노라 가벼이 말할 수 없다면 그리운 대로 그리워하라
그립다는 것은 아직도 사랑한다는 것
지금은 잊어내야 할 사람일지라도 마음 건너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써 버리려 하지 말고 기꺼이 그리움과 인사를 나누자
마음 준 적 단 한 때라도 있었던 사람이라면 청새치처럼 즐겁게
그리우면 그리워하라 눈물 나도 그리우면 그리워하라
 
한 편의 판타지, 한 편의 서사시, 한 판의 탱고로 야단법석을 펼쳤던 2016 전설적인 여름도 먼 훗날 그리워질지 모른다. 어시장에 전어축제가 벌어지고, 이별 이별은 생각도 못했는데 붙잡아도 떠나는 그 사람처럼 여름이 떠나려 한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인지라 사랑에도 불이 붙은 것일까. 벌써 9월 결혼 청첩장이 3개나 와 있다. 허기야 마산 제1부두 가을국화축제장에는 터를 고르고 있고, 돝섬 너머 마창대교의 노을이 꼭 가을 단풍을 닮았다. 천문학자의 건조한 분석의 별이 아니라 어린왕자의 물기 어린 감성의 별들이, 여름이 떠나간 자리에 가을로 자꾸자꾸 돋아나고 있다. 마치 어느 멋진 여름날 새벽에 핀 진자주 나팔꽃처럼 사랑으로 사랑으로….
<끝>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