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국립 청주박물관


◈선사문명
남한강과 금강이 흐르는 충북에서는 동굴유적 등 많은 구석기 유적이 확인됐고 사람뼈, 석기, 뼈연모, 동물화석 등 당시의 생활상과 환경 자료들이 출토됐다. 구석기인들은 이동생활을 했으며 막집과 동굴에 살고, 식량 채집과 사냥을 위해 도구를 제작해 사용했다. 충북의 신석기인들은 토기와 간석기를 사용하고 정착생활을 했다. 단양에서 발견된 조개팔지는 동남해안지역과 교류활동을 보여주며 금강유역에서 찾은 농경도구와 곡물자료는 내륙지역 신석기인들의 농경생활을 알려준다. 청동기인들의 마을과 고인돌은 주로 강가와 구릉에서 확인된다. 다양한 간석기와 민무늬토기를 사용해 쌀과 잡곡 농사를 지었던 청동기인들은 기원전 4세기를 전후해 청동기와 함께 철기를 사용하는 초기 철기시대로 접어든다.

◈고대문화
충북지역은 크게 한강수계권의 북동부, 금강지류인 미호천수계의 남서부로 구분된다. 한반도 북서부지역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남동지역과는 소백산맥의 여러 고갯길로 소통해 선사시대 이래 문화의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고대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줬다.
충북지역에는 전후한 시기부터 마한의 여러 소국이 있었으며 점차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의 치열한 접전과 교류 속에서 삼국의 문화가 중층적으로 남아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를 이뤘다.
삼국시대 말부터 신라문화가 빠르게 퍼졌으며 충주에 국원소경(중원경), 청주에 서원소경(서원경)이 설치되는 등 정치, 군사, 행정적인 면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됐다.

◈고려문화
고려문화실은 충북의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소개된다. 충북의 불교문화는 삼국의 문화가 녹아 있는 불교조각을 비롯해 금속공예, 불교회화, 인쇄문화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전개됐다.
고려시대 충북은 왕실과 호족의 지원을 받은 사찰들이 건립됐고 그 속에서 청주 사뇌사, 용두사, 흥덕사를 중심으로 불교 금속공예와 인쇄문화가 꽃을 피웠다. 사뇌사에서 사용됐던 의식구, 공양구, 장엄구는 고려 불교공예의 빛나는 발견이다. 또한 흥덕사에서 간행됐던 직지(直旨)쪹는 우리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소중한 유산이다.

◈불교문화
충북의 고대 불교문화는 고구려의 활달함과 백제의 부드러움, 신라의 소박함이 함께 묻어난다. 신라통일 이후에는 충주의 중원경과 청주의 서원경을 중심으로 불교문화가 발전했다. 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와 충주 탑평리석탑 등은 불심을 담아 통일의 위업과 국토의 중심임을 드러냈으며 청주 운천동동종, 보은 법주사석 등과 석연지, 괴산 각연사비로자나불상 등 불교유산을 남겼다.
고려시대는 왕실과 호족의 지원을 받은 사찰로 건립됐고 거대한 석불이 조성됐다. 고려 태조의 아들 증통국는 청주 보살사와 보은 법주사를 중창했으며 충주 승선사는 광종(925~975)이 어머니를 위해 발원해 창건한 사찰이다.
충북과 영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인 충주 미륵리에는 거대한 석굴사원이 세워졌다. 청주에는 용두사, 사뇌사, 흥덕사가 세워져 불교금속공예와 인쇄문화의 꽃을 피웠다. 또한 청주 용화사, 진천 용화사, 충주 원평리, 미륵리 석불처럼 거대한 불상이 만들어졌으며 또 거란의 침입과 관련한 재천 사자빈신사지와 공민왕의 태평을 기원한 영동 영국사 등 호국불교가 강조된 사찰도 건립됐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후 보은의 법주사 대웅보전, 팔상전이 재건됐고 왕실과 관련이 깊었던 신미, 학조 스님이 복천암에 주석했다.
-직지심체요절: 고려 우왕 3년(1377) 금속활자를 주조해 인쇄한 현존 세계 최고의 인쇄본으로 1455년 구텐베르크의 42행성서 보다 78년 앞서 인쇄된 것으로 프랑스에 소장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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