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경비 경력 6년차에 접어든 A씨는 십여 년 전만 해도 자신이 경비일을 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활전선에 뛰어든 그는 50여 년 동안 거의 쉬어 본 적이 없다. 커다란 화물용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쌀배달 일을 시작으로, 철공소에서 용접을 배웠고, 건축공사장에서 미장공이 되기도 했으며, 대형 목욕탕 보일러공으로 일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자격증을 갖추진 못했어도 현장업무에선 웬만한 유자격자보다 훨씬 더 뛰어난 실전감각을 발휘했다. 또래에 비해 키가 큰 그는 푸근한 인상과 넉살 좋은 성격 덕분에 어느 현장이나 업소에서도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몸을 혹사한 그는 눈과 귀가 어두워져 환갑을 넘기면서 생업에서 은퇴했다. 은퇴 당시엔 마당이 있는 번듯한 집 한 채와 모아둔 재산도 있어 노후를 보내기엔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든든하게만 보였던 집과 재산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
불행의 시작은 아들의 사업이었다. 건축자재 유통업을 하던 아들은 사업을 확장시키고자 아버지에게 손을 벌렸고, 나중엔 A씨의 집을 담보로 수억원대의 대출까지 끌어 썼다. 하지만 지역 건설경기가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건설사와 건축업자들이 줄줄이 도산해 나가자 아들도 납품한 자재 값을 떼이기 일쑤였고, 결국엔 폐업 후 잠적해버려 지금은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 가끔 채권추심업체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그의 살림살이를 보곤 별 말 없이 돌아갈 뿐이다. 모든 게 은퇴 후 불과 몇 년 새 벌어진 일이다.
한때 삶의 의지조차 상실했던 그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단칸 사글세방에서 살고 있다.
그의 경비월급으로 월세를 내고 쌀을 사고 병든 아내의 약값을 충당한다. 어느덧 일흔을 넘긴 그는 이제 나이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다. 일을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는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60대의 동료 경비원들 보다 더 솔선수범하며 열심히 뛰고 있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문턱에 서 있다. 어떤 경제학자는 모든 통계수치를 볼 때 이미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도 하고, 다른 학자는 아직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경계에 있다고 말한다. 어쨌든 잘 사는 나라 축에 끼긴 한 모양이다. 잘 사는 나라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된 지도 올해로 20년이 됐다. 몇 십 년 전의 식민지 상태와 전쟁폐허를 생각하면 눈부신 발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변을 둘러보면 잘 사는 사람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인데 은퇴한 노인들도 다시 일자리를 구하러 나서고 있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상승속도가 가장 빠르고 2, 3위 국가들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다. 여간해선 그 어떤 나라에게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을 기세다.
한국은 자살률도 높다. 이 역시 압도적으로 높다.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연령대를 가리지 않는다.
이래가지고 과연 선진국이라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걸까? 일부 대기업과 소수의 사람들이 부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다수 국민들에게 선진국이란 말은 허황된 신기루다.
2014년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9.6%. 이웃나라 일본은 19%에 불과하다. 한국의 60대 이상 고령층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1%에 달한다. 벌어들이는 돈보다 빚이 훨씬 더 많다는 얘기다. 빚의 구렁텅이에 한 번 빠져들면 자력으로 헤쳐 나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사회구조다.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27.3명. OECD 평균(12명)의 2.3배. 10년 넘게 OECD 1위를 달리고 있다. 한술 더 떠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자살률은 자그마치 55.5명에 달한다. OECD평균(12명)의 5배다. 부끄러움을 넘어 분노까지 이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일 감시·단속적 근로자의 근로·휴게시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관련기사 1면) 쉬는 시간만이라도 좀 제대로 쉬게 해 주자는 취지다. 감시·단속적 근로자는 노인과 소외계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경비가 대표적이다.
노인들의 목을 조르는 대한민국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여주는 대책이 되길 바란다.
우린 모두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되기 싫으면 그 전에 알아서 죽는 수밖에 없다. 노인을 위한 대책은 곧 나를 위한 대책이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