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추석이 지나고 첫 쓰레기 버리는 날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하얀 포대에 빼곡이 담겨 쌓인 재활용쓰레기의 대형포대가 거대한 탑을 이루고 서 있는가 하면 스티로폼 상자며 종이상자 또한 산더미 같았다.
좁은 나라라서 가능한 교통통신 시설의 발달이겠지만 우리는 이제 택배 없이는 못사는 나라처럼 배달천국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유치원 아이의 어버이날 카드에는 ‘우리집에도 택배가 더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라는 요구사항이 등장하고 외국에서 잠깐 다니러 온 사람들의 경우에는 너무나 부러운 문화로 동경하다가 갔다는 말도 있다.
첫발 내딛기가 어렵지 한 번 그 편리함을 맛보기 시작하면 그 또한 중독증세가 심각할 정도로 진화한다. 의식주성 모든 분야에서나 배달이 가능한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한다.
지난 번에 어느 호박농사를 짓는 현지인의 실질적 거래 장부를 보고나서 나는 정말 놀랐다. 농협에서 수매하는 가격은 상상할 수 없이 낮은데 그날 장을 봐 온 주부의 증언에 따르면 여전히 호박값은 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농작물은 택배배달을 시키지 못한다. 기호식품도 아니고 두고 먹는 먹거리도 아니라서 그러한 유통구조로 밖에 유통하지 못하는 작물이라서 딱하다는 생각만 하다가 그쳤다.
우선 나부터 변했다. 산간 지역에서 나는 나물류를 직송해 받아먹으니 싱싱하고 구매하기가 좋아서 선호한다. 허리가 변변치 못하니 무거운 물건이 부담스러운 조건이라서 이래저래 택배가 무한 고마움이다.
다양한 판매 경로를 통해 싸고 좋은 물건도 수시로 유통된다. 우리처럼 시간이 아깝고 여기저기 구매하러 다니기 불편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택배같이 고마운 시스템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방송에서는 이태리며 프랑스에서 속달되는 물건이 속속 방출되고 다시는 절대 수입하지 않는다고 다그치는 쇼호스트의 목소리를 들으면 사지 않는 사람은 바보처럼 느끼게 만든다.
방송마다 전국구로 맛나다는 음식을 찾아가 소식을 배달해준다. 궁금한 것 못참는 사람들은 이동인구의 한 몫을 한다. 여행 못 다녀  병난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들썩들썩 움직인다. 자기들 몸이 배달종목이나 되는 듯 곳곳으로 실어나른다. 정말 온몸으로 정서를 배달하며 전국구로 섞는다.
어느 해 중국항공을 날으며 그 나라를 생각했다. 도저히 택배문화가 정착할 수 없는 나라로 이해됐다. 대륙이 큰 나라와 우리나라와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우리니라만이 발달하는 직업 중 하나가 택배취급 직원이라면 앞으로는 그 직업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추이된다.
우선 포장 방법에 대해 연구하게 될 것이고 크기를 조절하면 로봇이 충분히 나르고 싣고 내리기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포장 연구가 당면과제가 아닌가 싶어진다.
종이 상자의 주원료가 나무라는 것을 알면 마음이 심란스러워진다. 얼마나 많은 나무가 죽어야 택배 포장용 상자가 되는 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얻는게 있으면 잃는 게 생긴다. 편리함을 얻으면 게으름이 그 자리를 메꾸고 게으름의 결과는 비활성화를 부르고 그 끝은 병폐로 이어진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몸을 부리면서 건강한 삶을 이어갈려고 분투노력하지만 돌아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누리는 행복의 정도는 그게 그것이다. 편리하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정보통신이 발달했다고 더 많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불필요한 정보로 고달프고 수고하여 얻을 수 있는 열매와 행복감은 걸어서 갈 수 있는 만큼의 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만큼의 거리에서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본디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대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지나치게 거스르면 버티다가 터지는 풍선처럼 그동안 쌓은 것들이 산화해질 수도 있다. 역사는 그러한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말로나 나폴레옹의 말로 징기스칸의 말로를 보더라도 지나치게 키울 일은 없는데, 가속이 붙으면 멈춰지지 않아서 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저장 공간이 없는 아파트 문화에 맞는 택배산업이 자리잡기를 바라는 소망 하나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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