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일기 97

 


입대의 최 병 용 회장
경기 청평 삼성쉐르빌

“같은 동네의 ○○아파트가 3.3㎡당 1,500만원이 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권익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는 집을 내놓을 때 3.3㎡당 기준가격 1,500만원 이상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이 공고문의 명의는 ○○아파트 부녀회로 돼 있다. 이런 취지의 공고문을 부녀회 명의로 게시해 놓는 아파트가 상당수 있다. 일부 아파트 부녀회는 아파트 값과 관련, 부동산 중개업소의 거래 상황을 알아보고 이 같은 게시사항을 지키지 않은 입주민에게 단체로 찾아가 항의도 한다. 부녀회가 구성되지 않은 일부 아파트는 젊어진 노인회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녀회란 건전한 가정 육성과 여성의 자질 향상, 생활개선 계몽 사업, 불우이웃돕기, 소득증대 사업을 통해서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자생적 비영리 단체이다. 하지만 아파트 부녀회는 입주민의 권익옹호, 친목, 여가선용 등의 명분으로 조직되고 있으나 실상은 일부 부녀회의 무리로 부작용을 낳고 빈축을 사는 경우가 많다. 부녀회의 본래 취지를 상실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아파트 부녀회가 주최가 돼 ‘불우이웃돕기’와 ‘공동구매 또는 바자회’란 명목의 야시장을 상설 혹은 주기적으로 연다. 일상용품을 할인해서 파는 행사와 더불어 먹거리 장터를 운영하는데 입주민들이 시끄러워하든 말든, 주차장을 점령해서 주차에 불편을 겪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입주민들의 의견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야시장을 개설한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항의하면 “부녀회에서 상인들에게 돈을 받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른다”라면서 모르쇠로 일관한다.
과거에는 이런 행위가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부녀회의 행사이며 경비를 조달하는 행위였지만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상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야시장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아파트의 공용 시설을 임대하는 것이니 만큼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로 인해 발생한 수입은 잡수입으로 처리해 70%는 각 가구에 n분의 1로 분배를 하고, 30%는 규정에 맞게 아파트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특정한 단체가 야시장 수입금의 전체 또는 일부를 마음대로 편취하는 것은 명백한 아파트 잡수입 횡령에 해당한다. 입대의나 관리주체가 이를 묵인한다면 이 또한 직무유기이며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다.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가 부녀회에 약점이 잡히면 이를 통제할 명분을 상실하게 되고 전권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부녀회라는 정식 자생단체가 만들어지면 ‘아파트 공익을 위한 목적’이라는 명분이 있으면 일정금액을 지원해야 한다. 잡수입 중 공동체 활성화 항목에서 지원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공익적 명분이 없는 지원이나 터무니없는 금액을 지원하는 것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의결하면 안 되는 것이다.
부녀회가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파트 부녀회는 부녀회장의 헌신적인 봉사로 정기적인 반상회를 통해서 입주민들의 애로 사항과 개선 사항을 듣고 입주자대표회의 시 방청을 요청해 허심탄회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모으고 있다. 불우이웃돕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웃 간의 우의를 증진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최근 부녀회를 활성화하기로 의결한 한 아파트의 게시판에 쓰인 글을 보면 부녀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얼마나 팽배한지 알 수 있다. “직장 안 다니고 시간이 남아돌아 할 일 없는 부녀자들끼리 모여서 커피 마시고 수다 떠는 게 부녀회인데, 부녀회를 활성화해서 대체 무얼 하려는 걸까요? 동대표로 선출해 준 것은 입주민의 관리비를 아끼고 절약해서 알뜰하게 아파트 살림을 운영해달라고 뽑은 거지, 쓸데없이 부녀회나 지원해 주라고 뽑은 게 아닙니다”
필자의 아파트에서도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을 바라보고 부녀회 모집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단 2명에 불과해 구성이 무산됐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새 아파트로 모여 살게 되면서 굳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녀회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부녀회의 부정적인 활동에 SNS를 통한 의견제시가 가능해지면서 ‘구설수에 올라 좋을 게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탓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것’이 아니라 아파트 부녀회가 활성화돼 아파트값 담합 같은 부정적인 면보다 이웃 간에 사랑과 정이 넘치는 순기능을 더 많이 행하는 아파트가 많아졌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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