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지난 7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 국론마저 갈라져 서로 삿대질하는 사이 북한은 9월 9일 9시에 맞춰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어서 12일에는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는데 이는 1905년 인천에 지진계를 설치하고 지진을 계측한 이래 한반도에서 일어난 가장 강력한 지진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2016년 한가위에는 핵실험과 지진을 비롯한 한진해운 사태, 청년실업, 강남발 부동산 폭등과 구조조정 등 한결같이 어두운 소식들만 밥상머리를 맴돌았다.
경제 불황의 그늘도 짙어만 간다. 그동안 경제·사회 발전을 이끌어 온 ‘중산층’과 ‘신분상승’이라는 두 축이 무너지면서 자칫 ‘B급 국가’로 내몰릴 처지에 놓였다. 말 그대로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요즈음이다. 흔히들 현대사회를 ‘스트레스 사회’라고 부른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말들을 한다. 하여 현대인들은 이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질환에 노출되기 쉽다. 정신과적으로는 두통, 우울증, 수면장애, 공포증, 비만 등이 있고 신체적 질환으로는 과민성대장증후군, 신경성 위장병 및 피부병, 고혈압, 심장병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활력소’라는 당근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핵질, 지진 공포 등 다른 많은 나라 사람들은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수도 없이 겪고 사는 우리에겐 그저 사치로만 들린다. 그러니 이 시대 이 땅에 사는 사람치고 스트레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 중에서도 스트레스에 가장 많이 시달리는 사람은 아마도 직장인이 아닐까 한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장인들은 심장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다른 사람보다 2배 정도나 높다’는 연구 결과가 이에 대한 방증이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직업 가치관 1위는 ‘몸과 마음의 여유’였고 다음은 ‘직업 안정성’ ‘성취’ ‘금전적 보상’ ‘타인에 인정받기’ 순이었다. 그런데 공법에 의거 공공이 정한 규정에 따라 공익·공공의 업무를 수행하는 주택관리사 등의 경우를 보면 위의 5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각종 안전사고와 도난사고 심지어 외적 요인에 의한 단전·단수를 비롯해 홍수·태풍 등 천재지변까지 감당해야 하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관리현장은 그야말로 사방천지가 온통 ‘지뢰밭’이다. 최근에는 ‘간접흡연 피해’가 층간소음 못지않은 ‘시한폭탄’으로 등장했고 1,300조원으로 치닫는 가계부채와 1인 가구, 월세 가구 증가 또한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걸핏하면 터져 나오는 비리 보도와 온갖 갑질 횡포는 가뜩이나 처진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특히 경주 여진은 440여회를 넘기며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핵 못지않은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내진설계 기준이 시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건축물 90% 이상이 지진 발생 때 적절하게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내진설계가 형식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노후 아파트, 불량자재·부실시공 아파트까지 감안하면 관리자 입장에서는 머리에 쥐가 아니라 지진이 날판이다. 그래도 어쩌랴.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면 끌어안으면서 풀어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심신을 추슬러 자신이 관리하는 아파트의 준공연도, 내진설계 여부 등을 철저히 점검한 후 단지 특성에 맞는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한 호화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편히 보내고 있는 노인들이 치매를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곳은 선택받은 부호들만 사는 쾌적하기 그지없는 마을이다. 술주정뱅이나 노숙자 등 부랑아는 물론이고 골목을 시끄럽게 하는 개구쟁이들도 없는 곳이다. 그런데 바로 그게 문제였다. ‘인간은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 때 인체 내부에서 저항력도 생기고 그 과정에서 행복감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트레스의 역설’이다. 그러니 과도한 스트레스는 될수록 피해야겠지만 웬만한 건 부딪치며 이겨낼 수밖에….
이에 오늘도 전국의 일선 관리현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는 주택관리사 등에게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는 바로 스트레스가 없다는 스트레스’라는 말로 위안을 전한다.

류기용의 아파트세상blog.daum.net/ykypen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