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자귀 꽃이 피고 능소화가 피기 시작하면 여름이 온다. 해바라기가 피고 백일홍도 피면 매미마저 덥다고 울어 쌓는다. 무궁화가 수를 놓고 홍련, 백련의 연꽃이 절정이면 여름도 절정이다.
폭염주의보가 폭염경보로 바뀌면 으레 찜통이니 가마솥을 들먹이며 잠 못 드는 열대야라고 아우성이다.
방학이 있고 휴가철이 있는 여름은 더워서 오히려 좋은 사람도 많다. 여름밤이 뜨거워 잠들기 힘들지만 뜨거운 사랑은 여름밤이 짧다고 한탄을 하지 않는가.
새파란 바다가 더위에 지쳐 하얀 물거품을 내뿜고, 바다에 내려온 한밤의 별들이 덥다고 자맥질을 해대도 눈부신 낭만이다. 그 사이를 휘젓는 해수욕장의 사람과 사람들은 백사장의 하얀 모래만큼이나 순수로 아름답다.
청춘에 2류가 있고 3류가 어디 있으랴. 물살을 가르고 헹가래를 하는 아름다운 청춘들. 나인뮤지스의 ‘입술에 입술’처럼 닿을락 말락하는 저 파도가 모두 가슴 뛰는 청춘의 일류이어라.
따라 늙지 못한 마음 때문에 아직도 청춘인 사람, 미처 챙기지 못한 세월 때문에 지금도 청춘인 사람, 도로가 막히고 막혀도 저 아래 박 여사는 오는 여름을 맞아 비키니 수영복 챙겨 손자 따라 해운대로 나섰단다.
아무리 따져 봐도 지금이 가장 젊고 예쁜 때라고 순자 아줌마 며느리 따라 짧은 한쪽 다리 절룩거리며 제주도로 떠났고, 자장면 2,000원, 탕수육 6,000원, 착하고 아름다운 가게를 하는 김 사장 부부도 오는 여름을 맞아 지리산 계곡으로 떠났단다.
제철을 맞은 포도와 복숭아가 새벽 번개시장을 향기로 뒤덮는데, 휴가 나온 아들 준다고 제주 은갈치 두 마리에 만원 주고 연신 손부채를 해대는 민수엄마.
동남인력시장 앞에 연신 담배를 빨아대는 사람들, 오늘 일거리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담배연기가 새벽 더위에 비틀거린다.
질펀하고 펄떡거리는 어시장의 여름에, 얼음공장 사장이 무슨 일로 저리도 바쁠까.
우리의 아름답고 상냥한 모국어는 올 여름도 수백 만 대의 피서 차량이 몰리면서 전국 고속도로가 지·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오는 여름을 외면하고 휴가를 떠나지 않는 상사가 제일 대접을 못 받는 시대다. 휴가를 반납하고 일하는 미덕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지 오래다. 쓸 줄을 모르고 장롱 속에 감춰 두는 저 노인은, 좌측통행이 우측통행으로 바뀐 줄을 모르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꼭 경기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황 때에는 저축이 경기회복을 지연시킨다고 정부가 정말 걱정을 많이도 한다.
오는 여름은 맞이하러 떠나는 게 처방전이다.
조용필이,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라는 노래를 부른지도 21년이 넘었다.
나훈아가, 조용히 들려오는 조개들의 옛 이야기 말 없이 바라보는 ‘해변의 여인’을 부른지도 47년이 지났다.
‘해변의 여인’의 처음 제목은 ‘호수의 여인’이었다지.
김세환의 ‘모래 위를 맨발로’,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 윤형주의 ‘조개껍질 묶어’, 송창식의 ‘고래사냥’, 박인희의 ‘모닥불’, 높은음자리의 ‘바다에 누워’, 바니걸스의 ‘여름날의 바닷가’, 은희의 ‘모래위의 발자국’, 이쯤 되면 우리들의 여름이 이정석이 부른 ‘여름날의 추억’처럼, 불러도 대답 없는 슬픈 추억일랑 되지 말고, 딱따구리앙상블이 부른 ‘지난 여름날의 이야기’처럼, 그 얼굴에 노을이 물들어 오고 머리카락 바람에 헝클어질 때 너와 나의 기쁨과 사랑을 노래한 여름날의 바닷가를 잊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자, 시집 하나 챙겨들고 어디론지 떠나자.
수박씨를 허공에다 뱉으며 별을 헤아려도 좋은 그곳으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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