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온 국민이 똘똘 뭉쳤다. 진심으로 하나가 됐다.
보수와 진보도, 청년과 노인도 한 목소리를 낸다. 여성혐오나 미러링 남성증오도 의기투합했다. 물과 기름보다 더 분리가 확실한 여당과 야당까지 이구동성 합창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대동단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도 해내지 못한 일이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그 원동력은 ‘전기요금’이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어이가 없어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지만 이렇게 됐다. 전기가 국민을 하나로 만들다니….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한민국의 ‘약탈적’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체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너무 더워서 벌어진 일이다.
벌써 한 해 장사를 접었어야 할 에어컨 생산공장들은 지금까지 풀가동하고 있지만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다.
지구는 해를 더할수록 뜨거워지며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는 인류가 자초한 일이다. 특히 현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아주 지독하게 지구를 망가트렸다. 이런 마당에 집집마다 에어컨을 켜는 건 지구를 더욱 심하게 손상시키는 일이다. 발전소를 덜 가동하도록 ‘절전’하는 실천적 노력이 지구를 덜 망치는 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닥친 폭염은 그런 주장을 ‘팔자 좋은 타령’으로 여기게 할 만큼 치명적이다.
요즘 농촌 공무원들은 늙은 농부들을 따라다니기 바쁘다. 폭염 속에 일하다 쓰러져 사망하는 사고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골방에서 혼자 사는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면서도 ‘더워서’ 자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게 됐다.
좀 과장하자면 이젠 ‘에어컨이 곧 생명줄’이 됐다.
온열질환의 위험은 공동주택이라고 다르지 않다. 입주민도 관리종사자도 모두 위험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경비실은 더위와 추위에 매우 취약하다. 벽돌에 대충 시멘트를 발라 놓은 경비실 건물은 흡수한 태양열을 가둬 더욱 뜨겁다. 게다가 컨테이너 박스로 경비실을 삼은 경우엔 사우나가 따로 없다.
거기에 24시간 근무해야 하는 경비원들은 대부분 고령 노인들이니 언제 무슨 사고를 당할 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살인폭염 속에 그래도 미소 짓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경비실 에어컨 달아주기’ 캠페인을 벌이는 사람들이다. ‘내 배가 고프면 남도 고프다’는 걸 알고 내 양식을 기꺼이 내어 주는 사람들이다. 성자가 따로 있나, 바로 이들이 성자다.
그런데 이 와중에 믿을 수 없는 뉴스가 터져 나왔다. 입주자대표회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관리사무소장 직권으로 경비실에 중고 에어컨을 설치했더니 일부 입주민이 반대해 철거할 수밖에 없었단 소식이다. <관련기사 1면>
게다가 이 소장은 지자체의 행정처분을 받을 지도 모를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현재의 폭염은 천재지변이다. 입대의 구성까지 기다리다가 재해사망 사고라도 나는 날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동물도 그늘에 숨어 헐떡이는 이상난동에 어렵게 설치한 경비실 에어컨을 떼 내라니.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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