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2015년 8월 11일 제정돼 두 차례의 일부 개정과 1년의 유예기간을 거친 ‘공동주택관리법’이 마침내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이로써 지난 2003년 관리의 모법(母法)으로 등장했던 ‘주택법’에서 ‘관리부문’만을 독립적으로 특화시킨 새로운 모법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그 주요 골자로는 먼저 관리사무소장의 전문가적 역할과 입주자대표회의의 부당 간섭 배제를 비롯해 경비원 등 근로자의 적정보수 및 처우개선 그리고 분쟁조정위원회, 관리지원기구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공동주택 관리정책이나 주택관리사제도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다소 미진해 보인다.
이 시각 현재 우리나라 총 재고주택 약 1,600만호 가운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약 1,000만호에 달하고 5,140여만 전체 국민 가운데 약 3,000만명이 그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하여 이제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사회재·공공재 성격의 ‘공적 자산’이고 이에 대한 관리 업무는 공익 실현을 위한 ‘공공 업무’로 정의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시각은 아직도 공동주택 관리 업무는 사적 자치 영역이라는 타성적 한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적 영역’에 목을 매는 듯한 정부의 근시안적 시각은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대한 위헌 심판 청구 소송에서 “언론·사학의 자유 등 민간 영역의 위축 우려 있지만 그것이 공익(公益)보다 클 수 없다”고 내린 합헌 결정과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자고로 어떤 정책이나 제도가 온전하게 정착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훌륭하거나 또는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관리는 그 두 가지 요건 중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법령과 제도는 물론이고 제반 인프라 또한 허술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전문 관리 자격사가 소신껏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즉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는 풍토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20년 전 단순히 비용절감을 이유로 급조된 ‘150가구’라는 ‘의무관리 대상 공동주택’의 기준도 주택법 규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오피스텔, 연립, 다가구 등이 여전히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규모 공동주택의 경우 비용이 문제라면 주택관리사들로 하여금 ‘합동사무소’ 같은 것을 개설토록 해 몇 단지를 묶어 ‘순회 관리’ 방식으로 풀어 가면 된다. 일정규모(면적) 이상이거나 일정 수준의 인원이 상시 거주하고 있는 모든 공동주택은 다 같은 사회재·공공재 성격의 공적자산이고 모든 거주자 역시 똑같은 대한민국의 국민이기에 하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해 공동주택관리법은 주택의 건설·공급에서 ‘관리’만을 분리시키기는 했지만 ‘관리사무소장의 전문성 보장’이라는 상징적·선언적 의미만 있을 뿐 관리에 대한 공공성의 제고나 ‘선진화된 행정 서비스’ 특히 집합건물법 등 관리 관련 법령 등을 흡수·통일해 일목요연하게 정비하지 못한 절름발이 법안이다. 그래도 어쩌랴. 법은 허술해도 새로운 세상은 열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법이란 그 사회의 최소한의 규범이자 최하위의 도덕률에 지나지 않는 즉 양심이나 도덕, 상식이나 윤리 같은 고상한 덕목에 비하면 턱없이 저급한 수준의 사회 룰에 불과한 것.
순자(荀子)의 군도편(君道篇)을 보면 ‘유치인 무치법’(有治人 無治法)이라는 말이 나온다. 세상이 다스려지는 것은 사람의 능력 때문이지 법률 때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맥락에서 새로운 모법이 시행되는 이제부터는 국가 자격사다운 전문가적 능력 함양에 매진해 보다 격조 높은 관리능력을 펼쳐보여야 한다.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됐으므로 이에 대한 대응 매뉴얼을 비롯해 지구 온난화에 따른 각종 자연재해에도 충분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또 2년 뒤 전국 아파트·오피스텔이 남아돈다는 예측에 대비한 주거복지, 그리고 갈수록 늘어나는 ‘깡통전세’ ‘월세가구’ ‘홀몸가구’ 등의 증가에 따른 관리비 연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야 관리의 선진화·전문화·공공화를 완성시킬 수 있다.
이에 새로운 모법을 중심으로 새 세상을 열고자 하는 주택관리사 등에게 조셉 에디슨의 “인내하라. 경험하라. 조심하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는 말로 위안과 격려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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