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24절기의 9번째인 망종 전후는 농사철 중에 가장 바쁜 시기다. 농경중심 사회였던 우리의 조상님들은 망종을 가장 상서롭고 좋은 날로 생각하여 조상님의 산소에 잔디를 입히기도 하였다고 한다. 순국선열, 호국보훈의 현충일이 제정되던 해에 6월 6일이 망종이었기에 이날을 택했단다. 망종(芒種)의 망(芒)은 보리 같은 까끌까끌한 낟알 곡식을 말하며, 종(種)은 모종을 땅에 심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망종 때가 되면 마늘이나 감자, 양파 등이 거의 캐어지고 모내기를 한다.
먹는 것이 최우선이던 시대, 쌀 한 되 먹어보지 못하고 쌀 한 말 먹어보지 못하고, 큰 애기가 시집을 갔다는 옛날이야기. 하얀 삐삐며 하얀 아까시며 붉은 찔레순이 간식이 되고, 초록의 계절 신록의 계절에는 푸른 잎사귀가 새참이 되던 사랑이여. 저 산야에 2,500여 종의 나물이 있어 새마을운동의 원동력이 되고, ‘잘 살아보세’의 초석이 되지 않았을까. 쑥밥이라는 이름으로 상에 오른 밥그릇을 아무리 뒤적여도 밥알은 잠복근무를 하고, 때가 되어 손님이 찾아오면 순사가 찾아오는 것보다 더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가난하던 시절이여.
먹어야 산다는 명제 앞에서는 그 누구도 비방을 할 수가 없다. 쓰레기를 뒤지는 들고양이든, 고방을 넘나드는 생쥐든, 땅 밑을 기어가는 지렁이든…. 먹어야 살고, 살아야 역사를 만든다.
지금도 가장 큰 전쟁은 숟가락 전쟁이요, 지금도 가장 큰 싸움은 밥그릇 싸움이다. 지금도 너와 나의 가장 큰 정은 밥 한 그릇 하는 것이요, 지금도 우리 모두의 가장 큰 사랑은 식사 한번 하는 것이다.
숟가락에 윤기가 흐르고 밥그릇이 수북하면 가장 큰 평화인 것을.   
일손이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계절, 마늘 밭에도, 양파 밭에도 젊은 일꾼은 하나 없고 인근 도시에서 온 고령자인 할머니들뿐이었지. 새참을 먹는 할머니들 머리 위로 구름도 하나 없는 돌직구의 햇살이 내려온다. 호국의 꽃봉오리 보훈으로 만개하라는 표어는 펄럭이는데 날씨가 너무 덥다. 그 옛날엔 밭에서 일하는 엄마를 찾아 아가는 젖을 달라고 찾아오고, 술 주전자 엎지르며 철이가 뒤뚱거리며 달려오곤 했는데. 아기 울음소리 하나 없는 들판에 40살이 한참 넘은 노총각 하나 경운기로 망에 넣은 양파를 집하장으로 가져간다.
아버지가 모를 심기 위해 무논에 써레질을 할 때면 써레에 올라타 앞산만한 황소를 ‘이랴 이랴’하는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해 보였는지.
일꾼을 구하기 힘들어 일당 팔만이천원이 마산 시내의 시내버스가 머무는 주차장 옆 전봇대에 눈부시게 붙어 있다. 구치소의 노역장에서도 어떤 이는 일당이 400만원이라는데, 세상은 공평하지 못해 민주주의인 것을. 
미세먼지, 오존주의보에도 엉덩이에 빵떡의자 하나 달고, 긴 세월의 순결한 내상(內傷)을 참고 버티며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간다.
6·25전쟁 영남의 최대 격전지인 창녕의 박진전투는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압록강까지 반격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의 ‘전우여 잘 자라’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창녕의 낙동강으로부터 추풍령, 한강, 삼팔선까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국군장병의 모습이, 지금 할머니들이 뙤약볕 따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과 닮은꼴이다.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에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는 진혼곡이 낙동강을 흐르고, 당시의 어린 소녀들이 지금 거룩한 조국을 위해 온 몸으로 마늘을 캔다, 양파를 캔다.
벌써 대학생은 한 학기 종강파티를 하고 여름방학 특강으로, 글로벌청소년 양성과정으로, 태양보다 뜨겁게 열정을 불태우러 바깥으로 떠나고, 고령자 할머니들 마지막 호국인양 저 고랑 긴 밭을 전진이다. 고령자가 없었다면 저 길고 긴 밭의 마늘을, 양파를, 감자를 누가 심고 누가 캘까. 바다의 고깃배에도, 아파트의 경비실에도 세월이 훈장이 되는 고령자를 예찬하노라.
저만치 창녕 화왕산 관룡사의 입구 남녀 돌장석이 땀을 뻘뻘 흘리고, 용선대의 석가여래좌상 돌부처도 연신 땀을 훔치는데, 차이콥스키의 호수의 백조처럼 조용히 조용히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
이제는 고령자를 미래의 세대를 위해 씨앗을 뿌리는 은빛 일꾼이라고 하자.
농경문화의 쉼터 새참 때가 되었나보다. 발달하는 과학이 있지만 농경산업엔 특별한 비방(秘方)은 없고, 새참과 은빛 일꾼이 있어 대한민국의 농산물 걱정은 ‘뚝’이다.
2016 양파 값이 너무 싸다. 하늘이 위로를 한다고 장마가 서둘러 시작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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