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삼년산성
사적 제235호로 지정돼 있으며 대전, 청주, 상주, 영동으로 연결되는 요지인 오정산烏頂山(325m)에 있는 포곡식 산성으로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축성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완성해 붙어진 이름이라 한다. 신라가 서북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전초기지였으며 삼국통일전쟁 때 태종 무열왕(654-661, 재위)이 당나라 사신 왕문도를 이곳에서 맞이하기도 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이 성을 점령하려다 크게 패했던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석축 산성으로 평가되며 성의 둘레는 약 1.7㎞이고 높이는 13m, 폭은 8~10m에 이른다. 산성은 대체로 잘 복원돼 있으나 군데 군데 허물어지고 곧 무너질 위험이 있는 곳도 발견되는 것을 보면 시급히 복원을 마무리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우리 조상의 흔적이 그나마 남아 있을 때 그것을 잘 보존하는 것은 후손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암각자
삼년산성 내 연못 맞은 편 암석지대에 새겨진 글자들을 말한다. 아랫부분에는 아미지, 윗부분에는 유사암과 옥필, 그리고 보은사 쪽 암벽에 남술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글씨 가운데 아미지는 규모도 크고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당초의 연못이 점차 줄어들어 서쪽 성벽 근처에 마치 반달 모양으로 남아 있던 모습을 보고 새긴 것으로 짐작된다. 높이 2m, 너비 3.5m 크기의 수직 암벽에 높이 66㎝, 폭 19㎝로 신라의 명필로 유명한 김생의 글씨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아미지가 새겨진 암석 위에는 인위적으로 조성한 평지가 있는데 이곳에는 산성 경관을 조망하거나 적을 감시하려고 지은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쑥향이 물씬 풍기는 풀 숲을 걸어올라 빨간 그 열매로 삼복을 식혀본다. 눈 아래 펼쳐진 들과 산은 아늑한 어머니 품 속과 같고 멀리 구름은 모였다 흩어졌다 또 흘러가고 있다. 오늘은 이렇게 그날을 기억하며 그때 그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문화해설가는 땀을 팥죽 같이 흘리면서도 고향 자랑에 더운 줄도 모르고 해설에 열중이다. 요즘 농촌에는 인구가 감소해 애기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지경인데도 매년 1,000명 이상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며 특히 보은 황토대추는 일조량이 많고 토양이 비옥하고 밤과 낮의 기온차가 큰 대추재배 적지에서 생산돼 당도가 매우 높고 고품질을 자랑하며 무기질이 풍부해 모세혈관 강화와 뇌출혈, 고혈압의 치료 및 예방 효과가 뛰어난 장수식품이다. 눈 아래 펼쳐진 비닐하우스에는 대추 묘목들이 더위도 잊은 듯 무럭무럭 자란다고 설명한다.

삼년산성에 올라

굴러 굴러/ 삼천 번을 굴러// 오늘은 삼천갑자/ 동박삭이나 되어볼까// 쑥 냄새 향긋한/ 삼복을 걸어올라 맛보는// 서왕모 복숭아 훔쳐 먹는/ 그 맛,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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