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일기 89

 

 

입대의 최 병 용 회장
경기 청평 삼성쉐르빌

아파트 외부 지하공간을 활용해 탁구장을 만들어 입주민 운동시설로 개방했다. 입주민들의 운동공간인 탁구장이 어느 날 보니 인근 중학교 학생들의 하교 후 놀이터로 변해버렸다. 입주민의 자녀인 한 학생이 반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하교 후 놀이터가 돼버렸다. 어쩔 수 없이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고 입주민의 자녀만 이용할 수 있음을 주지시켜 내보냈다.
그러자 그 부모들이 찾아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놀 수도 있는 거지 꼭 입주민의 자녀만 이용해야 하느냐? 어른들도 가끔 친인척을 데리고 와서 치지 않느냐?”하며 억지를 부렸다. “이곳은 입주민들의 운동시설이지 학생들의 놀이터가 아닙니다. 성인들이 어쩌다 한번 친인척을 데리고 와서 치는 것과 아이들이 매일 찾아와 탁구 치는 것을 동일시해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중학생 이하는 부모의 동반 하에만 탁구장을 이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을 개정해 공지한 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주민 공동 이용 시설의 이용규정이 얼마나 세부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새로 만들어 놓은 탁구장 구석에서 소변냄새 같은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우연히 보니 중학교 아이들이 놀면서 구석에서 소변을 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단속이 필요합니다’라는 카페의 글이 이용 자격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에 힘을 실어줬다.
카페에는 층간소음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글이 많았었는데, 층간소음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는 글도 올라왔다. “요 며칠 위층에서 아이가 뛰어노는 소리가 들려서 손주가 놀러 왔구나 하고 조금 신경이 쓰여도 이해했습니다. 가끔은 늦은 시간까지 ‘쿵쿵’ 거리는 소리에 미간이 찡그려지긴 했지만 늘 있는 게 아니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위층 아기엄마라면서 롤 케이크를 사들고 ‘요즘 좀 시끄러웠죠?’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러 오셨더군요. 해산을 하고 몸조리를 하러 친정집에 당분간 머물고 있다고, 시끄러워도 조금만 이해해달라고 하더군요. 괜히 인상 찡그렸던 것이 갑자기 미안함으로 확 밀려오더군요. 아래층에 대한 배려와 양해 한마디면 층간소음으로 이웃 간에 불미스러운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래층도 우리 집 아래층이 또 있으니 나 또한 아래 집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다툼은 사라지고 이해와 배려로 행복한 우리 아파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행복아파트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들하세요”라고 끝을 맺으며 층간소음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해줬다.
삼성쉐르빌은 산과 강이 어우러진 곳이어서 그런지 유달리 거미가 많다. 반면 거미가 해충을 잡아먹는 탓에 모기 등의 벌레가 없는 것은 장점이다. 하지만 거미줄로 인한 거미의 흔적은 거실 유리창과 방범창을 더럽혀 입주 2년차가 된 후에는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고층 아파트 유리는 가구별로 청소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의결해 잡수입으로 전 가구의 거미줄 제거 및 거실 유리창 외벽 청소를 의뢰했다.
입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고 했던 사업은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관리사무소로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것은 물론, 카페에도 ‘이렇게 청소할 거면 뭐 하러 청소했냐? 우리 집은 청소 전과 후가 별반 다를 게 없다. 창살에 덕지덕지 낀 때는 왜 제거 안하느냐?’ 등 불만의 목소리들이 가득했다.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공고문을 게시했다.
“삼성쉐르빌 전체 유리창 청소를 했습니다. 저희 집도 청소가 만족스럽지 못해 청소업체와 언쟁을 벌였지만, 500만원의 청소비로는 유리창 청소 외에 창문 철제 가드까지 청소할 수는 없었습니다. 철제 가드까지 포함한 대청소를 하려면 약 2,000만원의 청소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제대로 청소를 못할 바에는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는 동대표들의 의견이 많아 외부 창 청소는 앞으로 하지 않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청소가 힘든 부분들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공동으로 청소를 진행했는데, 모두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와 청소를 진행한 입대의로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거미와 친해지는 방법, 친환경이라 생각하는 방법, 각자 거미를 제거하는 방법, 앞으로 선택은 각 가구의 몫입니다.”
‘입대의 차원의 공동 청소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운 사건이었다. 필자의 집 발코니 창은 비오는 날, 발코니 수도에 호스를 연결해 물총을 쏴서 청소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