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1박 2일이란 예능 프로그램에서 멤버들이 미션을 수행 중이다. 이화여대생 500명 앞에서 깜짝 강의를 하는데 강의 내용들이 만만치 않다. 경험을 바탕으로 전해주는 이야기에 공감하며 청중들이 울고 웃는다.
낯은 익는데 이름을 모르는 연예인이 등장하였다. 오래 전에 대박을 친 드라마 ‘김탁구’의 주인공 윤시윤이란 배우이다. 연기도 싱싱하고 인물도 좋은데 그 드라마 이후에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 이상히 여기고는 있었지만 궁금증은 이내 지나가고 다시 얼굴을 보자 생각이 났다.
그는 학습하고 길러진 배우가 아니라 대본도 잘 읽지 못하는 상태로 느닷없이 캐스팅이 돼 시트콤에 출연해 시청률 20%를 찍었다. 이어 광고도 하고 돈도 벌고 차도 생겼는데 운이 좋게도 김탁구란 드라마가 대박을 내어 시청률 50%를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한 게 아니라고 운이 좋아서 거기까지 간 것이라고 생각돼 드라마가 끝나기 무섭게 철저히 숨어버렸다. 군대에 가서야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여태 달려온 길이 고속도로였기에 오르막 내리막길을 가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볼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드라마에 출연한 다른 배우들은 악플에 시달리기도 하고 내리막길을 가며 돌아가기도 했는데 자신은 이제야 현실로 돌아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고 고백해 큰 박수를 받았다.
고속도로로 달리는 여행과 네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길을 따라 가는 여행의 맛은 다르다. 편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구불거리는 길을 가면서 떨어지는 해를 만나고 풀잎이 바람에 사운대는 풍경을 만나는 것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세월이 지나 나중에 인생을 결산해보면 어디에 자를 대는가의 문제이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나는 그 배우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펀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중국 증권이 한참 가승을 부릴 때 은행원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 갈 때마다 올라서 나는 마음이 부대꼈다. 내 돈이니 내 마음대로 해야 옳을 것 같아서 직원들이 만류해도 나는 그때마다 환매를 했다. 조금 두려웠다.
나는 천천히 꾸준히 오르기를 원했다. 그 길이 오래 가는 길이라고 생각되어서다. 그렇지만 연신 올랐고 나는 갈 때마다 환매 요청을 했다. 그러면 여지없이 조정을 받고 한동안 숨을 돌리고 나면 다시 오르막길을 힘차게 올라간다. 은행원이 가만 둘 리가 없다. 숨찬 기운이 잠잠해졌으니 나는 다시 긴장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들어가곤 했다. 이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나는 숨이 차서 그래프를 보기가 두려웠다. 금방 풍선이 뻥 터질 것 같아서 어느 날 펀드에 가입한 모든 돈을 다 뺐다. 출발선에서 12배로 뛰어있으니 가슴이 벌렁거리고 믿기지 않아서 솔직히 무서웠다. 은행에서 또 전화가 왔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왜 자꾸 움츠러드느냐고 제발 중국펀드에 다시 들어가자고 조른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넣었다가 발목이 덜컥 잡혔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패닉상태가 돼 우울 모드였다. 그때 나는 쇼크를 받기는 했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를 때에 느끼던 불안이 그제서야 안정감이 들었다. 차곡차곡 땀으로 다져진 수입이  아니라 가치롭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있던 돈을 잃어서 기분좋은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속이 조금 개운해졌다. 그것이 다 내 돈이라고 이해한다면 도둑놈 심보 같아서 대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했다. 합리화가 아니라 그렇게 길들면 다른 세상살이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만사에 오답 정리를 한다. 나는 엎어진 자리가 일어설 자리라고 이해하고 도망가지 않아서 실패를 성공의 경험치로 사용하고 있다. 지나친 성공치가 두려워 더 성과를 높이기 어렵다고 숨을 이유는 없었다. 끊임없이 자기 질문을 하며 현실을 직시하고 살아가는 경험자는 사회를 보는 눈이 다소 다르다.
무엇이든 두려워하기 보다는 부딪치며 알아가고 깨지고 엎어지며 면역력을높여야 내공이 붙는다. 하나의 경험을 다른 일에 대입하며 나는 쉼을 소중히 여기는 버릇이 붙었다. 숨을 고르고 나면 언제나 상황은 새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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