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현금 흐름표, 빅 데이터, 1인 시위 등으로 몸살을 앓는 동안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이 훌쩍 지나버렸다.
‘우리는 삶의 쳇바퀴를 돌려/ 가끔 일상의 옆길로 가보고 싶다’는 시구를 떠올리게 하는 때는 바야흐로 여름 휴가철이다. 발 빠른 이들은 벌써부터 멋진 계획을 세워 놓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산과 들, 계곡이나 바다 같은 뻔한 일정보다 다소 리스크가 따르더라도 좀 더 색다른 것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2010년 ‘이그노벨상’ 평화상을 받은 영국 정신생물학회 리처드 스티븐스 의장은 신간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에서 ‘욕’ ‘음주’ ‘섹스’ ‘과속운전’ ‘극한 스포츠’ ‘게으름 피우기’ ‘껌 씹기’ 같은 행위가 가져다주는 ‘작은 유익함’을 들춰냈다. 이른바 ‘금기행위의 역설’을 실험을 통해 밝혀낸 것이다. 여기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욕이다. 욕은 대체로 부정적이고 불쾌하며 적대적인 개념으로 인식되지만 아픔을 다스리는 도구 등으로 이미 숱하게 입증된 바 있다. 하긴 ‘종놈’에 ‘개·돼지’가 난무하는 이 얄궂은 세상에서 내뱉을 육두문자라도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음주의 경우도 흥미롭다. ‘건전한 술’의 장점은 사회성 고양이나 유명 예술가들의 영감 차원에서 입증된 사례가 흔하다는 것이다. 악성 베토벤이나 작가 피츠 제럴드, 추상화가 잭슨 폴록은 창작과정에서 알코올의 힘을 빌린 것으로 유명하다.
섹스의 경우를 보자. 성서시대 이래로 섹스는 공개장소에서 입에 올리기를 꺼리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제 섹스에 대한 연구는 공공연한 실험의 대상이 됐다. 이 책이 소개하는 ‘건전한 섹스의 혜택’ 또한 그런 연구 가운데 하나다. 실제 실험을 통해 ‘동작이 있는 감정’인 섹스가 통증과 불안의 해독제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정리정돈이 잘된 방보다 어지러운 방에서 창의성이 높아지고 낙서가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이른바 ‘역전의 결과’들이 줄을 잇는다. 그런가 하면 집중하기보다 공상에 빠졌을 때 직관적인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껌 씹기가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준다는 실험 결과도 눈길을 끈다. 또한 이 책 내용의 상당부분이 ‘공동선’에 반하며 그동안 해서는 안될 ‘나쁜 짓’으로 금기시 돼온 ‘일탈에 대한 역발상’이라는 점에서 다소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실험을 통해 일탈의 유익함을 강조하면서도 ‘적당함’의 균형성을 빠뜨리지 않고 있음이 또한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적절한 일탈은 삶을 좀 더 즐겁게 만드는 활력소가 된다’는 ‘떳떳한 삐딱이의 역설’쯤 되는 셈이다.
스카이다이빙이나 번지점프, 급류타기 등등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극한 스포츠에 돈을 써가며 빠져드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한편, 우리 선조 중에도 원칙보다 소중한 ‘가벼운 일탈’을 논한 사람이 있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 고상안은 한 선비 남매의 일을 기록하면서 ‘일연지상경 구매지사중야’(一       之嘗輕, 救妹之死重也 : 한 점의 고기를 먹는 것은 가벼운 일이고 누이의 죽음을 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부친상을 당하자 누이는 너무 슬픈 나머지 병을 얻어 위중해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오빠가 “기력을 회복하려면 고기를 먹는 것이 좋겠다”라고 권하자 누이는 “오라버니가 드시면 저도 먹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상주는 고기를 입에 대서는 안 된다’는 당시의 전통적인 예법 때문에 오빠는 끝내 고기를 먹지 않았고 결국 누이는 세상을 떠났다. 훗날 오빠는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바람에 누이가 죽은 것이다”라고 후회하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예는 인간이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통해 경험적으로 도출해 낸 최적의 행동규약이자 원칙이다. 특히 도덕적인 면과 결부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원칙보다도 더 엄격하게 지켜지도록 요구돼 왔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상호작용의 연속이다. 때로는 그 원칙들이 지켜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일의 경중을 살펴 과감하게 원칙에서 벗어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맹목적인 원칙에만 얽매이다 보면 오히려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 옛날부터 ‘정도(正道)가 막히면 권도(權道)를 쓴다’는 말이 쓰여 왔는지도 모른다.
2016년 여름휴가는 ‘적절한 일탈’을 통해 새로운 활력소를 찾는 기회로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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