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홀로 있으려고 노력하는 시기를 인생의 자궁기라고 한단다. 어머니의 자궁 냄새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어머니’라는 말만 나오면 눈물이 글썽거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참외냄새, 수박냄새, 포도냄새, 딸기냄새가 진동을 한다.
지금 고향에는 삶은 옥수수냄새, 삶은 고구마냄새, 삶은 감자냄새가 풀풀 날리고 있겠지.
세상이 어렵다 해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가 있다면 희망은 얼마든지 있다.
정현종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살면, 세상 일 어려운 것이 꽃 피게 하려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
오늘도 아버지의 땀 냄새가 있어 아파트에 새벽은 경비원의 눈동자처럼 푸르게 오고, 오늘도 아버지의 작업복 냄새가 있어 아파트에 저녁은 입주민의 미소처럼 고요하게 온다. 목적 없는 관성의 삶이 아니기에 황지우의 겨울 산처럼, 아버지는 오늘도 견디고 빨리 집으로 간다. 어깨가 무거워도 사랑 때문에 집으로 가는 아버지.
겨울왕국의 마지막 대사가 ‘진정한 사랑만이 얼어붙은 세상을 녹일 수 있다’고 했었지. 아버지가 그렇다.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는 우리들의 고통을 향기 품은 냄새로 다독이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의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먼 곳의 그리움 때문인지 코는 항상 개방되어 있다. 눈도 감으면 되고 귀도 막으면 되고 입도 다물면 되지만, 코는 왜 죽을 때까지 개방되어 있는 것일까. 비좁은 두 구멍으로 온갖 난타전을 당해도 코는 사시사철 열려 있다.
남이 나를 알아봐 달라고 막말도 할 줄도 모르는 코. 오죽하면 코가 잘 생기면 복 코라 했을까. 복이 내려오는 길목, 코는 생명의 파수꾼인 행복이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명 때문에 코는 주야로 열려 있는 것일까. 아니지, 따뜻한 향기 품은 사람냄새 때문이다.
맨 마지막에 눈 멀고 귀 먹어도 맡을 수 있는 사람냄새, 사랑 때문이다.
향기와 냄새, 그건 운명 같은 사랑이다.
<끝>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