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수의 에세이

 

 

양봉업자가 꽃을 찾아 이삿짐을 챙기는 계절만이 향기의 계절이겠는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시사철 향기가 끊이질 않는다. 화려한 꽃이 없어도 솔잎의 향기며, 댓잎의 향기는 사시사철 푸른 향기다. 작렬하는 태양과 짙어가는 신록의 계절, 풀 냄새가 좋다.
향기는 코로 맡는다. 우리 모두는 양쪽 콧구멍의 상피를 덮고 있는 2천만 개의 후각수용체를 가지고 있으며, 하루에 2만3,000번의 호흡을 한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코로 분간할 수 있는 냄새는 1만개에서 4만개 정도이며 전문가는 10만개도 넘게 구별을 한단다.
후각을 전담하는 뇌는 전체 뇌 크기의 0.1퍼센트라고 하는데 대단하지 아니한가. 좋은 냄새를 향기라고 한단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것들을 일컬어 천년의 향기니, 고전의 향기니, 산사의 향기니, 클래식의 향기니 해대는 모양이다. 좋은 냄새를 풍기는 걸 향기라 하여 남자의 향기니, 여인의 향기니, 당신만의 향기니, 인간의 향기니 또 해대는 모양이다. 음식에도 맛을 더한다고 바닐라향기니, 재스민향기니, 라벤더향기니, 딸기 향기를 첨가하는 것들이 많다.
나는 커피를 향기 때문에 마신다. 프리지아도 향기 때문에 좋다.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도 맑고 자비로운 향기다. 예술에 향기가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 이등병의 군사우편도 향기를 실어야 애인이 달려오고, 애인의 연애편지도 향기를 실어야 가슴이 두근거린다.
마릴린 먼로가 ‘샤넬 NO.5’ 두 방울을 뿌리고 잤다고 해서 그 향수가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 향수는 그 누구도 흉내내질 못하는 그 향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우리를 위로하는 고마운 말은 향기이며, 향기는 감정을 전달하는 또 다른 언어이다. 때로는 미소로, 때로는 유혹으로….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주장한 독일의 철학자이며 심리학자인 페허니는 말한다. 어둠 속에서 인간은 목소리로 서로를 분간하고, 꽃들은 향기로 서로를 분간하며 대화한다고. 사실 인간의 말은 사랑하는 연인끼리의 말을 제외하고는 꽃 만큼 미묘한 감정과 좋은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고. 작은 제비꽃 향기 하나가 우주를 들어 올린다.
마하트마 간디의 몸무게가 40㎏이 못되어도 지구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질 않았던가. ‘꽃이 향기로 말하듯’이라는 이채의 시다.

꽃이 향기로 말하듯
우리도 향기로 말할 수 있었으면
향긋한 마음의 꽃잎으로
서로를 포근히 감싸줄 수 있었으면

한마디의 칭찬이
하루의 기쁨을 줄 수 있고
한마디의 위로가
한가슴의 행복이 될 수 있다면

작은 위로에서 기쁨을 얻고
소박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듯
초록의 한마디가 사랑의 싹을 틔울 때
그 하루의 삶도 꽃처럼 향기로울 것입니다.  

마음의 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그 말씨에도 향기가 납니다.
마음 씀씀이가 예쁜 사람은
표정도 밝고 고와서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다울 테니까요.

나는 한정 없이 부드럽고 한정 없이 강하다는 한지의 향기가 좋다. 비단은 백년을 가도 한지는 천년을 간다고 한다. 바람이 통하고 달빛이 통하고, 아기살 같이 보드랍고 엄마 품 같이 따뜻한 한지. 빛을 산란시켜 은은하고, 불에 타도 그을음이 없다는 천년의 종이 한지. 모든 잡냄새를 제거한다는 그 옛날 초가지붕 아래 한지의 향기가 달이 밝은 이 밤에 무척 그립다. 요사이는 한지의 고급화로 녹차한지도 솔잎한지도 있다지만 엄동의 바람을 막아주던 그 옛날 맨살로 같이 울던 한지의 향기여.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통을 하는 향기가 있다면, 구태여 사랑을 들먹이지 않아도 좋으리라. 제일 좋은 향기는 꽃에서가 아니라 혹시 너와 나의 마음에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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