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오 정 순  수필가


 내가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되는 동안 잠시 다른 동네에 가서 살 때다. 단골 매장을 정하고 이용하려다 마음에 드는 세탁소를 찾았다. 세탁을 충실히 잘 해주고 쓸데없이 손님에게 환대를 하며 호들갑을 떨지 않아서 좋았다.
어느 날 주인이 울상을 지으며 말을 건다. 그 가게를 얻기 전에 소문난 세탁소라는 안내를 받았는데 손님이 차츰 준다고 고민을 한다. 나는 옷의 수선이 덜 돼 기다리는 동안 그들에게 왜 손님이 줄어드는지 이유를 찾아냈다.
천주교 신자인 그녀는 손님들을 모두 ‘손님’이라고 불렀다. 사장님, 사모님, 선생님을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대충 그렇게 부르려니 혀가 굳는 것 같다고 했다. 간과 쓸개를 뺀듯 굽어야 남의 호주머니의 돈을 꺼낼 수 있다는데 그녀는 세상살이에 왕초보자였다.
나는 다른 가게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이사갔다가 다시 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동네 상인들은 깎듯이 사모님 대접을 해주는데, 다른 곳에 가면 무시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상한다는 게 다시 이사오는 이유였다.
그들이 받는 대접은 물건값에 고스란히 포함된다. 하찮은 쓰레기통 하나의 가격이 다른 동네의 두 배가 넘는다.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그 동네의 물가가 시중보다 훨씬 비싼 반면, 손님에 대한 대접도 그래서 비싸다.
그곳의 상인들은 오래 거래한 그들의 기호를 꿰고 있다가 만나면 마치 한 고객을 위해 준비한 물건처럼 호들갑스럽게 내어놓는다. 그런 그들에게 세탁소 안 사장은 전혀 친할 뜻이 없는 사람처럼 ‘손님’이라 불렀으니 세탁소에 손님이 준 것은 당연하다. 호칭 때문에 인격이 평가절하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다.
그곳 손님들은 장사의 혀끝에 놀아나다가 이제사 진실한 대접을 받는 셈인데, 자신이 속은 줄도 모르고 마냥 높인 호칭이 좋았던 것이다. 낯선 관계 속의 사소한 것일지라도 지킬 것은 지키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며 보편적 질서 안으로 들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낯선 곳에 가봐야 사람 공부를 할 수 있다. 인사는 어떻게 주고받는지, 자신이 어느 내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마음의 희비를 챙겨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사모님, 사장님은 이제 보편적 존칭이 돼버렸다. 요즈음에는 나이가 조금 들어보이면 회장님이 된다. 상상 임신으로도 배가 부르고 격에 맞지 않는 호칭도 자주 들으면 그런 줄로 착각하게 되는데 가치 없는 호칭의 노예로 살다가 본질을 놓치면 낭패다. 노력했다는 말로는 통과하지 못할 어리석음을 맞을 날이 올 것이므로 버릴 것은 얼른 버리는게 상책일 듯하다. 
어느 날 한 문학단체에 갔다. 회장, 원장, 국장, 박사, 위원 등의 호칭을  불러주며 서로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누군가 호칭이 시원치 않으면 격상해 붙여주고 불러준다. 그들의 호칭놀이는 유통기한 지난 명함들의 서커스 같았다. 주로 정년 퇴임자들이 많은 곳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던 사람들은 호칭으로 호객한다는 것을 놓치는 수가 더러 있다. 아니 알면서 용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착각한다. 그러한 대접이 어느 곳에서나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나이들다가는 망신 당하기 딱 좋다. 진정한 자기를 만나기란 요원하다.
영악스런 장사꾼의 혀 끝에 놀아나지 않으려고 긴장을 해도 노련한 장사에게는 언제나 속고 돌아오다 보니, 듣기 좋은 말로 순간 경계심을 허무는 사람보다 세탁소 안 사장처럼 본질을 챙기는 사람이 믿음직스럽다. 몇 번만 빈 말에 속고나면 신뢰는 깨지고 긴장은 고조된다.
그러나 가끔은 속고 싶은 심정도 있다는 게 인생의 난제다. 거품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사모님’이라 부르고 정직한 것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는 ‘손님’하고 부른다면 그 또한 기분좋은 일일 것 같다. 결국 ‘손님과 사모님’은 세상 사는 숙련도와 직결되는 언어생활일 듯하다.
그 세탁소 안 사장은 누군가로부터 존중받아서 싫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꿰뚫을 날이 올 것이고 세상을 새롭게 눈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 세탁소 안 사장의 호칭이 특이하다. 나이든 여자들을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산 세월을 인정해주는 정도 같아서 듣기 거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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