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기용 칼럼

 

 

류 기 용 명예회장

엉터리 회계감사, 엉망진창인 언론보도, 엉성한 지자체. 게다가 집 한 채 가진 일부 무지렁이들이 벌이는 광란의 춤사위까지. 이 모든 일들이 악몽처럼 겹쳐지고 있는 요즈음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일선 관리현장은 장마철 날씨만큼이나 음습하고 짜증스럽다. 이에 법정법인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법령 개정과 제도 개선에 나섰고 서울시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1인 릴레이 시위는 한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일반 회원들도 끓어오르는 공분을 삭히며 자정 노력과 함께 자구책 강구에 몰두하고 있다. 하여 다소 귀에 거슬릴지라도 그것이 설마 ‘남이 하는 매질’만큼이야 하겠는가 싶어 이참에 국가자격사들이 반드시 털고 가야 할 몇 가지 고언(苦言)을 전하고자 한다.
첫째, 속물근성(俗物根性)이다. 주택관리사제도 시행 26년째를 맞는 지금 비리에 대한 수사나 보도는 거의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물론 여기에는 법적·제도적인 문제점, 시스템의 구조적인 모순 등 원천적인 하자와 태생적인 한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특히 국가공인 전문관리 자격사가 임기도 보장이 안 되는 불안한 신분으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풍토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은 가히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로 비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열악한 환경이나 급여 조건도 이유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진실 규명이나 본질 파악보다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2009년쯤, 한 노숙자가 고물을 주워 팔아 1억2,800만원이라는 큰돈을 모았지만 그 돈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건이 있었다. 호적도, 나이도, 이름도 몰랐던 그는 ‘나해동’이라는 가명으로 은행거래를 했는데 실명제가 도입되면서 돈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법원의 판결로 이름을 찾고 돈도 찾을 수 있게 됐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지만 그는 적지 않은 돈을 모으고도 남들이 버리거나 임자 없는 물건만 찾아다니는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개같이 벌어서 거지같이 살다’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둘째, 노예근성이다. 얼마 전 지방의 한 양로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양로원에는 80세에 가까운 노인 한 분이 있었는데 이 노인은 해만 뜨면 빗자루들 들고 나가 마당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뙤약볕 아래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이에 원장이 빗자루를 빼앗아 감추고 마당 쓰는 일을 못하게 했더니 그날 오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혹시나 해서 전에 노인이 살던 옛 주인집에 가봤더니 마당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더란다. 이 노인은 평생 남의 집 머슴으로만 살아왔기에 아직도 자기를 머슴으로 생각하는 노예근성에서 끝내 헤어나질 못한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예전에는 관리사무소장과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동반 참석하는 행사가 많았는데 이때 관리사무소장이 입대의 회장의 수행원인지 비서인지 헷갈릴 정도의 볼썽사나운 모습을 간혹 볼 수 있었다. 위탁관리회사 임직원과의 관계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주택관리사는 관리업계의 단순한 한 축이 아니라 핵심 축이며 공법상의 엄연한 ‘관리주체’다. 일제에 나라를 뺏긴 후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동포들에게 “그대는 주인인가 나그네인가”를 신랄하게 물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다. ‘어디를 가든 주인이 되면 그곳이 곧 참된 자리’이며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 되고 서는 곳마다 주체가 되라’는 뜻이다.
셋째, 패배근성이다. 1996년 서울시회 첫 운영위원회 석상에서 “주택관리사의 공적 1호는 엉터리 위탁회사, 공적 2호는 악질적인 직업 동대표꾼, 3호는 무자격 소장”이라고 공표했다가 바로 다음날부터 위탁회사 몇 군데와 몇몇 입주자들의 거센 항의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강한 반발은 외부보다 내부에 있었다. 우리 회사는 안 그렇다느니 입주자대표 중에는 좋은 사람도 많다느니 하면서 ‘같이 가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이다. 이런 부류는 임원 중에도 많았다. ‘종놈’ 소리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그나저나 걸핏하면 사람이 죽어나가고 전과자가 속출하는 작금의 관리현장을 보노라면 도대체 국가는 무얼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이지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국가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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