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의 문화답사


 

 

이 시 속에는 ‘시경’에 나오는 시와 비슷한 구절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 중에서도 ‘아가위꽃’이란 시는 정약용의 시와 아주 비슷하다. ‘아가위꽃’은 옛날에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잔치하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그 가운데 몇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내와 자식이 정답게 지내는 것이/ 마치 금슬을 연주하는 것 같아도,/ 형님과 아우가 화목해야만/ 즐겁고 기쁘다고 할 수 있다./ 네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그대의 처자식을 즐겁게 해 주어라./ 이렇게 하려고 애를 쓴다면/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과 형제가 화목하게 지낸다면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겠다. 그러니 집안이 화목하게 하고 아내와 자식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소망이 정말로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시의 다섯 번째 구절을 보면 ‘네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앞에서 본 정약용 시의 여섯 번째 구절에 나오는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는 말과 비슷하다. 정약용은 일부러 ‘시경’의 시와 비슷한 표현을 골라서 위 시의 내용을 자기의 시 속에 담으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 멀리 귀양와서 형제와도 떨어져 있고, 아내와 가족과도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매화가지를 찾아온 저 새처럼 함께 지내고 싶은 소망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도 지금 한 사람의 아내요,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가 됐구나. 형제 간에 우애롭고 가족 간에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네가 더 노력하렴. 그러면 저 예쁜 꽃이 지고 알찬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듯 네 집안에 기쁘고 즐거운 일이 언제나 가득할 게다.
정약용이 딸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려 주며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치마에 그려 보내 준 그림을 보고, 멀리 계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예전에 있던 시의 표현을 슬쩍 빌려 와서 자신의 생각을 담는 것을 한시에서는 ‘용사’라고 한다. 그래서 ‘시경’에 실려 있는 ‘아가위꽃’이라는 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정약용이 새에게 하고 있는 말만 듣고도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줄 금세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다 떨어져서 입을 수 없게 된 치마가 이렇게 해 훌륭한 예술작품이 됐다. 이 그림과 시가 참으로 이름다운 까닭은 그 안에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모든 것이 너무나 풍족해 물건이 아까운 줄도 모른다. 멀쩡한 새 옷도 내다 버리고, 학용품도 아낄 줄 모른다. 아낄 줄 아는 마음이 없이는 소중한 것도 없다. 부모가 소중하고 형제가 소중하고 가족이 소중하고 친구가 소중한 줄을 모른다. 헌 치마 조각도 이렇게 아껴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나눌 줄 알았던 옛 선인들의 거룩한 마음씨를 잊지 말아야겠다.
 

 

저작권자 © 한국아파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